'적극적 뇌물공여' 이재용에 징역 깎아준 법원, 왜?

전현진 기자 2021. 1. 18. 20: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법원은 그를 ‘적극적 뇌물공여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뇌물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18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와 횡령 등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하여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승계작업을 돕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하였다”고 판시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해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2017년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8월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뇌물액을 89억여원으로 보고 유죄를 인정,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선 1심과 달리 약 36억원만 뇌물로 보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항소심 결정을 다시 뒤집고 뇌물액을 86억8081만원으로 판단해 파기환송했다. 이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그대로 인정한 뒤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약 4년 동안 재판이 이어지면서 이 부회장은 정치 권력에 순응해 뇌물을 건넨 ‘수동적 피해자’라는 논리를 펼쳤다. 특검은 반대로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에 필요한 도움을 얻으려 한 ‘적극적 뇌물공여자’라고 봤다. 뇌물 제공이 수동적이었는지, 혹은 적극적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법정형을 결정하는 중요한 양형 요소다.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양형기준에는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가 감경요소로, ‘적극적 증뢰, 청탁내용이 불법하거나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경우’를 가중 요소로 두고 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해 “대통령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손해를 입을 염려가 없다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뇌물을 공여하는 경우”와는 다르다고 했다. 대신 “뇌물을 공여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을 하게 되면 대통령으로 하여금 청탁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관계 공무원 등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는 점에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뇌물을 주는 것과) 죄질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 “경영권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6억8081만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하여 이를 뇌물로 제공하였고, 허위의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법으로 범행을 은폐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위증까지 하였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해 “단순한 수동적 공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적극적인 뇌물 공여에 따른 가중요소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부회장의 혐의들에 양형기준을 적용하면 권고형은 징역 4년~10년2월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양형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법정형의 하한선인 5년형에 ‘작량감경’(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판사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형법상 조항)을 적용해 절반을 깎아주는 쪽을 택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뇌물 요구를 거절하기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참작할 때 (이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