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이란 핵협상,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2021. 1. 1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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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이스라엘 국익에 희생 강요당한 한국과 이란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어떤 도시의 골목길에 음식점 A와 B 2개 있다. A가 파는 음식은 값이 비싸지만 맛은 그저 그렇다. 그런 A에 견주어 B는 값이 싸고 맛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 그 골목 일대를 장악한 폭력배들이 A의 주인과 친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쟁업소인 B의 영업을 방해하려고 여러 가지로 일을 벌일 것이다. 음식을 시켜 먹고는 생트집을 잡고 소란을 피우거나, 가게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험상궂게 눈을 부라리는 따위다. 그럴 경우 오던 손님들도 발길을 돌리게 될 게 뻔하다.

손님들이 끊어진다면, B음식점은 전화 또는 컴퓨터로 주문을 받아 배달이라도 해야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폭력배들이 배달원들의 오토바이를 막아서며 일을 그만두라고 겁박한다면 그마저도 어렵다. 결국 A음식점 주인과 폭력배들의 유착으로 말미암아 B는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는 지경에 이른다. 덩달아 피해자들이 생겨난다. B음식점에 재료를 대주던 사람들,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 사먹던 단골손님들도 피해자다.

미국은 국제 깡패인가

최근 한국 화학운반선이 이란에 나포돼 있다. 이란은 석방 조건으로 한국이 동결 중인 석유 결제자금 70억 달러를 내놓으라 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 주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니라 미국의 압력 때문에 못 줬다. 음식점 B에 그동안 밀린 외상값을 갚으려 하는데, 동네 깡패가 그 돈 갚지 말고 그냥 갖고 있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은 국제 깡패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부터 이란을 경제제재로 더욱 옥죄면서 석유 수출길을 막아섰다. 도대체 누굴 위한 중동 정책인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이다. 음식점 A가 이스라엘이고, 음식점 B는 이란, 그리고 한국이 B의 음식을 시켜 먹던 손님 가운데 하나다.

이란산 원유 수입은 2018년 6개월 유예조치로 근근이 이어가다가 2019년 5월부터 완전히 멈추었다. 한국이 들여오던 이란산 초경질유는 값도 싸고 질이 좋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 무렵 국내 석유 업계는 "이란산은 대체 불가인데..."라고 탄식하면서 트럼프 쪽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한미 동맹과 미-이스라엘 동맹의 차이

힘의 정치(power politics)라는 말이 있듯이, 국제질서가 힘의 논리에 움직인다고 한다. 폭력배의 주먹이 도덕이나 염치보다 앞서는 뒷골목 질서나, 강대국이 힘으로 윽박지르는 국제질서나 힘의 본질에선 같다. 하지만 답답하다. 도대체 미국이 무슨 합리적 근거로 한국-이란 사이의 자유무역을 막는 것인가. 우리 한국은 왜 고분고분 미국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가. 미국이 설정한 불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만, 이럴 때 꼭 나오는 한미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얘긴 여기서 뺐으면 좋겠다.

무려 5배 올리려는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문제 하나만 봐도 정말로 혈맹 맞나 의심이 드는 한미동맹과는 달리, 미국은 이스라엘과 문서 형태의 동맹조약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최우선 동맹국으로 이스라엘의 안보와 이익을 챙겨주는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는 미 민주당-공화당 구별 없는 정책 이념으로 고착돼 왔다. 미국이 해마다 군사원조 30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를 무상으로 퍼부어 주는 나라는 지구상에 이스라엘 하나밖에 없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는 명분은 이란의 핵개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이란이 핵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에게 안보 위협이 될 것인가.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결국 이스라엘 안보를 챙겨주기 위한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할만한 나라는 이란 하나뿐이다. 바이든 새 행정부도 친이스라엘이란 측면에선 기존의 미 중동정책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란의 불편한 관계, 그 책임은?

지난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화학 운반선(한국케미) 나포 억류하는 사건은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낳은 불행한 사건이다. 이란 정부는 억류 해제 조건으로 한국내 이란 동결자금 70억 달러(7조 6000억 원) 반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 미뤄, 한국 배가 걸프해역(페르시아만)에서 해양환경 오염을 일으켜 나포했다는 이란 정부의 주장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 4일(현지 시각) 걸프 해역에서 한국 국적의 케미컬 운반선(왼쪽)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은 2010년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했고, 이 계좌를 통해 원유 수출 대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되고 지금껏 2년 반 동안 자금이 묶였다.

이란으로선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급하다. 국토면적이 한반도 넓이의 7.5배, 인구 8500만 명, 석유매장량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인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와 코로나19로 이중고를 겪는 중이다. 2018/19 회계연도에 -5.4% 경제성장률, 2019/20년은 -7.6%를 기록했다(추정).

2018년 트럼프의 미국이 핵합의를 무시하고 대이란 경제제재를 다시 시작하자 주요 산업인 석유부문 생산이 50% 줄어들었다. 이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산업도 코로나 19 탓에 사실상 마비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내 이란 동결자금 70억 달러가 풀린다면 경제에 숨통을 터줄 수도 있다.

한국-이란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 이 사건을 따지고 보면, 1차적 책임은 트럼프에게 있다. 제재를 위반할 경우의 불이익을 생각하면, 한국이 동결자금을 이란에 돌려주기는 어려웠다. 한국 정부도 책임이 없지 않다.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제재로 고통받는 이란 정부에게 우리 한국의 곤란한 입장을 잘 설명함으로써 한국-이란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갈 외교적 노력을 좀 더 세심하게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이스라엘 안보 챙겨주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스라엘 유착 구도에 휘말려 이란과 불편한 사이가 됐다. 아울러 값싸고 양질의 이란 석유를 들여오지 못하는 불이익 겪고 있다. 한미동맹이란 이름 아래 미국-이스라엘에 끌려다니는 한심스런 모습을 한국 시민사회가 비판하고 나서야 마땅할 듯하다.

'오바마와 반대로 하기'

지난날 오바마 행정부는 외견상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내세우며, 인권을 경시하는 중동 동맹국들과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비판하며 이스라엘 정부에 제동을 걸었고 △악명 높은 인권 사각지대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2015년 7월 7자회담(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이란)으로 이란과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를 성사시켰다.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제재를 풀어 주는 것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대했지만, 오바마는 밀어붙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막가파나 다름없는 현실주의적 패권 정책을 펴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가들 사이에서도 논란과 반감을 불렀다. 오바마 정책을 지우는 이른바 '오바마와 반대로 하기'(Anything But Obama, ABO)'였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 정책에 눈 감는 등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최대 후원자 역할을 했고,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한다는 오바마의 행정명령을 뒤집었고, △유럽 국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이란과의 핵합의를 폐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기쁘게 했다.

바이든의 당선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나쁜 소식, 이란과 팔레스타인에겐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이다. 지난날 오바마의 중동 정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기에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는 초기엔 삐꺽거릴 것이다. 바이든은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의 반인권적 태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빈 살만은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죽은 사건의 배후 인물이다.

'트럼프와 반대로 하기'

바이든 행정부는 기본적으로는 오바마의 중동정책을 복원하는 '트럼프와 반대로 하기'(Anything But Trump, ABT)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2020년 1월에 내놓았던 이른바 '트럼프 중동 평화구상'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안이기에 폐기하고, 그동안 실종되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바이든도 미국의 다수 정치인이 그렇듯이 기본적으로는 친이스라엘 성향이지만, 전임자 오바마가 그랬듯이 유대인 정착촌 확장에 비판적 입장이다.

'트럼프와 반대로 하기'라 했지만, 100%는 물론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정책 성과물이라 얘기되는 '아브라함 협정' (이스라엘과 중동 일부 국가들과의 수교)은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댄 셔피로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망했듯이, 바이든은 다른 아랍국가에게도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밀어붙일 것이다.

미사일과 핵 개발 움직임의 속내는?

가장 큰 관심사는 바이든이 부통령일 때였던 2015년에 맺어졌던 이란핵합의(JCPOA) 복원이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바이든은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 핵협정을 복원해서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해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과의 핵협정을 이끌어낸 실무자들이다. 이들이 다시 나서서 이란 핵합의를 복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가 문제를 제기했듯이, 2015년 핵협상 과정에서 논의만 되다가 합의에서 빠졌던 이란의 탄도미사일 규제 조항을 놓고 다시금 이란과 씨름할 것인지가 관심사항이다. 이란 탄도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가 있는 이스라엘의 요구와 미 정치권의 친이스라엘 분위기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은 그동안 미사일 능력 향상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아래 내용 참조). 따라서 바이든은 이란과 핵협상에서 탄도미사일도 논의 사항에 포함시키려 한다면, 이란은 이에 반발하면서 미국이 납득할만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란은 미사일 기술에 관한 한 세계적인 선진국이다. 이슬람혁명(이른바 호메이니혁명) 30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2009년 2월 자체 기술로 '오미드', 우리말로 '희망'이란 뜻을 지닌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북한 중거리 미사일인 '노동'을 모델로 이란이 독자 개발한 샤하브-3 탄도미사일은 최대 사거리는 1300km~2000km에 이른다. 이란 테헤란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거리는 약 1800km. 이스라엘이 이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뿐 아니다. 이란은 2020년 8월보다 성능이 강력해진 신형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탄도 미사일엔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국 드론 공격으로 죽은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이름을, 순항미사일엔 친이란 이라크 민병대 부사령관 아부 마흐디 알 무한디스의 이름을 각각 붙였다.

최근 이란은 핵개발에도 한걸음 나아갔다. 2015년 핵합의에서 이란은 우라늄 농축 농도를 3.67%로 제한받았다. 핵합의에 따라 그동안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에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2020년 12월 3일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암살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암살 사건 직후 이란 국회는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높이는 핵개발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2021년 1월 4일 이란 정부는 포르도(Fordow)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 정도를 20%로 높이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 대변인은 "이번 결정은 궁극적으로 그동안 이란을 압박해온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란원자력기구(AEOI) 대변인은 이란은 앞으로 우라늄을 최대 60%까지도 농축할 수 있다고 한술 더 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란의 이런 움직임들이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란이 핵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란의 최근 움직임은 실제로 핵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기보다는 바이든 새 행정부와의 핵협상을 앞둔 포석으로 보인다.

6월 이란 대선이 변수

이란으로선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려면 미국과의 핵협상 복원을 통해 제재에서 풀려나는 것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언제쯤 미국과 이란이 핵협상 테이블에 마주할 것인가. 여기엔 다가올 6월의 이란 대선이 하나의 변수다. 이란은 6월 대선을 앞둔 정권 교체기다. 이란 국민들은 경제난을 겪는 과정에서 중도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2013년, 2017년 재선)에 실망감이 높은 편이다.

로하니는 3선 금지 규정에 따라 입후보하진 않는다. 이란의 6월 대선에 입후보하려는 자는 2021년 4월부터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에 후보 등록해야 하며, 이후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6월 초에 최종 대선 후보가 가려질 예정이다. 이란 헌법상 최고지도자이자 시아파 성직자인 알리 하메네이는 차기 대통령에 군사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인물이 당선되기를 바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따라서 오는 6월 대선에서 중도 개혁 성향의 인물보다는 반미 보수 강경 성향의 인물이 승리할 가능성 높다.

이란 온건파 지식인들은 한탄한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이란의 대외개방과 경제발전을 더디게 만들뿐더러,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입지를 좁히고 보수 강경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 6월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가 승리하는 구도를 바랄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미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를 은근히 바랬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이란 테헤란 대학에서 열린 금요예배는 반미 구호로 넘쳐난다 ⓒ김재명

이란 6월 대선에서 이란 강성 보수 인물이 당선될 것이란 전망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6월 대선 전에 어떤 식으로든 타결 또는 최소한 부분적인 성과를 내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이 달라 조속 타결은 쉽지 않다. 이란이 '미국의 선 제재 해제'를, 미국이 '선 합의 후 제재 해제'로 맞선다면 6월 대선 전 타결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란 미사일 부분도 논란거리다.

바이든 행정부가 차기 이란 정부 출범할 때까지 핵협상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 6월 대선 때까진 핵협상 논의를 계속 띄우면서 반응을 지켜보다가, 대선 뒤 새정부와 본격 협상을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사우디를 비롯해 이란 핵협상 타결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의 비밀 공작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이란 핵과학자 피살과 같은)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사우디와 미 석유업계의 유가 저울질

바이든이 이란과 핵협상을 벌일 때 마땅찮은 눈길로 지켜볼 쪽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도 있다. 사우디는 중동 지역패권의 경쟁자인 이란을 제재로 묶어둬 약화시키길 바라기에 이란과의 핵협상을 반대해왔다. 사우디가 신경 쓰는 것은 수니(사우디)-시아(이란)의 오랜 지역패권 다툼 요소에다 유가 요인이 더해진다.

트럼프가 대이란 제재를 본격화하기 전인 2017년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400만 배럴이었다. 제재가 풀릴 경우 이란은 하루 평균 200만 배럴의 원유 수출이 가능하다. 사우디는 세계 원유시장이 경기 불황에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원유 수요 부족인 상황인데, 이란이 석유시장에 나선다면 공급 과잉으로 유가 하락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내다본다.

저유가 흐름은 사우디뿐 아니라 미국의 석유업계 이해관계도 걸려있다. 수압 파쇄법(fracking)으로 생산하는 셰일 오일의 경우는 특히 채산성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 의회를 비롯한 정치권에는 석유업계의 입김이 강하다. 미국내 친이스라엘 압력 단체인 이스라엘공익위원회(AIPAC)를 비롯한 이스라엘 로비의 힘도 엄청나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의 핵협상을 벌인다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저항 요인들을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해나갈 것인가도 관심을 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 방해공작

이스라엘은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정을 복원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태세다. 바이든 당선 뒤인 2020년 11월 22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보기관 모사드 수장인 요시 코헨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폼페이오 미 국무를 은밀히 만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이 비밀회동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이란 로하니 정부 사이의 핵협상을 훼방놓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비밀회동 바로 뒤인 2020년 11월 30일 이란 핵 과학자 파크리자데 피살된 것은 모사드가 바이든의 핵협정 복귀 정책을 훼방 놓고 흔들기 위한 기획 살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묵인 아래 이스라엘이 실행한 것으로 추정 보도했다.

이란은 암살 작전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며 미사일 반격까지 거론했으나 일단 위기 국면은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정면 대응을 삼간 것은 미국과 벌일 핵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이스라엘의 의도에 휘말려 판을 깨지 않으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걱정하는 것은 이란이 핵개발에 성공한 다음 핵탄두를 장거리 미사일에다 장착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적 보복과 핵전쟁이 가져올 상호확증파괴(MAD) 등 그 뒤 펼쳐질 상황을 떠올리면, 이란의 핵공격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미 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도 일찍이 2012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실은 글(제목: Why Iran Should Get the Bomb)에서 "이란 지도부는 자기 파괴적인 '미친 성직자들'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처럼 자국의 안보를 걱정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 주장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이란 핵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보일 거친 대응방식이다. 이란의 핵 개발 의도 자체가 위협이라는 인식을 지닌 이스라엘로선 핵협상을 깨뜨리기 위한 공작 차원에서 이란 핵 과학자 또는 군부 지도자 암살공작 등을 이어나갈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가능성은 낮지만) 이란 핵시설 공습을 꾀할 수도 있다. 중동지역 사람들은 "중동평화를 흐리는 먹구름은 이스라엘로부터 흘러온다"는 말들을 한다. 그 말이 적어도 2021년엔 틀리길 바랄 뿐이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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