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대통령의 펀드 마케팅

김현동 2021. 1. 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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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2년째인 2015년 청년일자리 지원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정식명칭은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에 1호 가입자로 2000만원을 기부했다. 청년희망펀드 설립 취지는 그럴듯했다. 청년 취업 확대와 민간 일자리 창출을 지원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렇지만 사실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의 실제 사업은 청년 취업기회 확대와 민간일자리 창출 지원 사업을 위해 설립된 '청년희망재단' 사업 지원이었다. 관제기부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박 전 대통령의 청년희망펀드가 관제기부였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진짜 펀드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는 취임 2년째였던 2019년 생애 처음으로 펀드투자에 나섰다. 대통령이 가입한 펀드는 국내 소재·부품·장비업체 주식에 투자하는 'NH-아문디 필승코리아 국내주식형펀드'였다.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는 '한국판 뉴딜 펀드'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기존에 투자했던 '필승코리아 펀드'의 수익금(4500만원)을 환매하고, 신규 투자금(500만원)을 더하는 분산투자 전략까지 선보였다.

대통령의 펀드 마케팅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청년희망펀드는 청년일자리 만들기라는 캠페인에서 시작돼 대통령의 제안과 장차관·대기업 오너의 참여 릴레이로 이어졌다. 전 국민의 자발적 기부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정작 펀드의 운용성과와 그에 따른 사업목적 결과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다.

'필승코리아 펀드'는 일본의 잇단 경제보복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업체를 육성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필승코리아 펀드'의 운용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 비중이 22%로 가장 높다. 현대차, KB금융지주, 네이버, 카카오 등도 펀드자산 상위 10위 종목에 포함돼 있다. 소재·부품·장비 중소·중견기업을 키우자면서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고, 일본서 모바일서비스와 금융사업을 하고 있는 네이버를 극일(克日) 펀드에 담은 건 아이러니다.

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펀드' 마케팅 역시 실상은 좀 다르다.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그린 뉴딜·안전망 강화 등에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한다는 거대 프로젝트다. 한국판 뉴딜을 위한 진짜 뉴딜펀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출자를 통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손실보전 역할까지 맡는 정책형펀드는 올 3월에나 펀드 결성이 이뤄질 예정이다.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뉴딜펀드는 정책형 뉴딜펀드 이후에 사모재간접 형태로 나올 계획이다. 대통령이 투자한 뉴딜펀드는 민간의 자생적 펀드로 엄밀히 말하면 뉴딜펀드가 아니다. 실제 민간 뉴딜펀드의 투자설명서를 보면 "뉴딜 정책의 일환도 아니고 세제혜택도 없다"고 돼 있다. '필승코리아 펀드'가 삼성전자나 현대차, 네이버에 투자한 것처럼 민간 뉴딜펀드도 뉴딜정책과 관련없는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대통령은 펀드 마케팅에 열심이지만, 일반 국민은 펀드보다 주식 직접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반 국민 가운데 펀드 투자자 비율은 21.6%로 1년 전보다 13.8%포인트나 감소했다(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설문 조사). 펀드를 통해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고, 펀드보다 주식 투자가 더 매력적이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청년층의 생애 최초 주식 투자가 늘어나 20대의 금융투자 비중은 30%에 육박하고 있다. 금융투자를 시작한 배경이 흥미롭다. 국민의 31%는 주택 구입자금 마련을 포기했다. 23%는 은퇴자금 마련 계획을 버렸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대출마저 막히니 대안으로 주식투자를 선택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올초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주거안정을 위한 빠르고 효과적인 주택공급방안 마련도 약속했다. 주택공급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이쯤되면 뉴딜펀드도 좋지만 청장년층 생애 최초 주택구입을 지원하는 펀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펀드가 아니어도 된다. 정부는 올해 세제혜택 상품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 가능 일몰규정을 폐지했다. 영구화된 ISA를 활용하면 서민의 주택구매를 도울 수 있다. 영국의 주택구매(Help to buy) ISA나 평생(Lifetime) ISA가 실제 사례다. 펀드 마케팅보다 이런 정책 발굴이 대통령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citize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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