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실형' 판결문 들여다보니..재판부 "삼성 미전실 위법행위에 대응방안 못 내놔"

이미호 기자 2021. 1. 18. 18: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연합뉴스

정준영 판사(서울고법 형사1부 부장판사)가 18일 뇌물 공여 등의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양형을 결정하면서 이 부회장과 삼성의 준법감시 노력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은데 대해 "준법감시제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위법행위의 예방에 있는 것이지 감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업들에게 유죄가 인정되면 그제서야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작량감경 사유로 삼는데 매우 신중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권 승계 관련, 유형별로 발생가능한 위험 정의했어야"
18일 공개된 이 부회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기업범죄 사건 발생 이후에야 준법감시시스템을 강화했다는 사정이 양형 조건에 참작되려면 그 실효성이 매우 엄격하게 검증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양형기준상 준법감시제도 관련 규정은 기업 등 조직의 형사책임이 문제됐을 때, 그 기업이 적절한 준법감시제도를 갖춰 실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면 책임을 감경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준법감시제도의 도입을 장려하고 촉진하도록 돼 있다.

재판부는 "기업이 위법행위를 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거나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면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준법감시제도를 자발적으로 운영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준법감시제도를 근거로 감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위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라는 전제 자체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준법감시제도를 통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예방하려면 발생가능한 위법행위를 △유형별로 △최대한 사전에 예상해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을 정의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강화된 준법감시제도는 일상적인 준법감시 활동에 더해 대외후원금과 내부거래 등 이 사건에서 문제된 위법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전실 위법행위, 대응방안 없었다"
재판부는 특히 향후 보완해야 할 부분도 언급했는데 "과거 삼성그룹에서 위법행위를 주도한 ‘구조본(구조조정본부)’ ‘미전실(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가 위법행위를 했을 경우에 대한 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 측 전문심리위원인 김경수 변호사는 "외부 후원금 지출, 합병을 위한 주식의 매수 또는 매도 같은 실무차원의 행위 없이는 불법과 비리가 완성될 수 없는데, 관계사 차원의 실행행위 단계에서는 준법지원인의 실무적 감시 활동이 가능해 최고경영진의 거대한 불법과 비리 단서를 걸러낼 수 있다"고 항변한 바 있다.

재판부는 "최고경영진이 경영권 승계 등을 목적으로 위법한 행위를 하려면 회사 내 조직을 동원할 수 밖에 없는데 준법감시제도가 강화되고 준법감시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회사 내 조직’을 이용해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계열사 가운데 삼성전자, 삼성물산 주식회사,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에 대해서만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최고경영진 위법행위는 그 이외의 회사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실행행위 단계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불법행위를 통제하려면, 삼성그룹 계열사 대부분에 대해 실효적인 감시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준법감시위 조직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점,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미연에 차단키 위해서는 비자금 조성에 대한 실효적 감시가 이뤄져야 하는데 대외후원금 지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과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방법을 삼성 측 스스로 분석해 대응방안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이 관리해야 하는 ‘법적 위험’에는 현존하는 위험에만 국한하지 않고 임직원을 동원한 차명주식 보유 등을 "관리돼야 할 법적 위험"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