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건 없어요" 우리 아이 성평등 의식 키우기

김지윤 2021. 1. 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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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스며든 성차별 문화
게임·유튜브 금지도 한계..
'존중' 뿌리로 한 젠더 교육 필요
차별받은 경험 이야기해보고
'남자다움' '여자다움' 아닌
'나다움'에 대한 감각 키워줘야
‘나 답게’ 수업 활동사진. ‘여자답게’ ‘남자답게’ 등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학생 이름)답게’를 적어보며 자신만의 장점을 알아보는 활동이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제공

열한살 아들을 둔 박은미씨는 최근 아이가 하는 게임 속 채팅창을 보다가 ‘정말 심각하다.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성적인 욕설과 비하 발언이 난무했다.

기사로 옮겨 적기에도 꺼려지는 여성혐오적, 성차별적 표현이 게임 채팅창의 90%를 채웠다고 한다. 박씨는 “아이에게 ‘이건 나쁜 말이다’ 하고 알려줘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무조건 게임을 하지 말라고도, 유튜브를 보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존중과 공감’을 가르치는 것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집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보호자들의 고민도 함께 늘어났다. 성차별적인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아이, 단톡방 등에서 상대방을 비하하는 걸 놀이처럼 즐기는 아이에게 제대로 ‘젠더 교육’을 하고 싶지만 문턱이 높다고 느끼는 보호자들이 많다.

젠더 교육은 ‘나와 너를 존중하는 교육’이라고 불린다. 성별은 피부색처럼 태어날 때 그 누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이 결정한 것도 아닌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부터 시작하면 아이들은 쉽게 이해한다. 최근에는 공교육 현장에서 젠더 교육에 뜻을 둔 현직 교사들의 책이 많이 출간돼 있어 가정에서도 한 단계씩 시도해볼 만하다.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김은혜 교사가 최근 펴낸 <젠더감수성 교실>에는 가정과 학교 등에서 쉽게 해볼 수 있는 젠더 교육법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한겨레출판 제공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김은혜 교사는 지난달 <젠더감수성 교실>(한겨레출판)을 펴냈고,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김수진 교사와 동료들이 펴낸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서해문집)도 보호자들의 반응이 좋다. 김은혜 교사와 김수진 교사가 추천하는 ‘가정에서 해볼 만한 젠더 교육 방법’을 알아본다.

꼭 ‘성교육’으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젠더 교육이라고 해서 꼭 여자와 남자를 다루며 ‘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 젠더 교육의 시작은 ‘어린이 인권’부터다.

김은혜 교사는 “아이들이 기사나 댓글에서 ‘초딩’ ‘주린이’(주식 초보자) ‘노키즈 존’ 등을 많이 본다. 이게 초등학생인 자신들을 얕보고 무시하는 표현이란 건 다 알고 있다. 아이 자신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부터 알려주면 젠더 교육이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요즘 무언가에 미숙하다, 잘 모른다는 말을 할 때 ‘주린이’ ‘부린이’ 등 어린이의 끝말을 따서 ‘~린이’라고 하잖아요. 교실에서 아이들 대부분이 이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표합니다.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표현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죠. 노키즈 존도 마찬가지입니다. 젠더 교육은 아이 스스로 약자나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교육이라고 해서 아이를 앉혀놓고 ‘각 잡고’ 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입장이 돼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나쁜 말’에 대한 감각을 바로 익힌다.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해보려면 ‘유엔아동권리선언’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활용해보자. 초등 사회 과목에서도 인권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린이 인권’ 등에 관심을 갖는다. 권리선언 등에 명시된 다양한 항목들을 살펴보며 “이렇기 때문에 너는 귀한 사람인 거야. 남이 너를 때리거나 욕하는 건 잘못된 거지. 너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란다”라고 설명해준 뒤 “그런데 이 권리는 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어. 그러니 남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면 안 돼”라고 말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젠더 교육의 핵심인 ‘존중과 공감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보며 대화하기

아이와 보호자가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젠더 교육의 ‘산 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 성인임에도 밥을 짓지 못하고 제대로 청소하지 못하는 남자 연예인들의 미성숙한 모습이나 여자 연예인에게 갑자기 무례하게 옷을 던지며 “빨래나 해 와!”라고 말하는 진행자의 모습, 여성 연예인에게 애교를 요구하는 모습, ‘얼평’ ‘몸평’을 하는 자막 등이 그대로 방송에 나오는데, 그때 아이와 편하게 한마디씩 나누어보면서 보호자도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교육도 겸할 수 있다.

김은혜 교사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다. 애교 없는 딸, 잘 우는 아들 등 우리 사회에서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젠더 고정관념에 대해 아이와 대화해보면 좋다. 아이에게 ‘너답게 사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해주길 권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자신이 들었던 성차별적인 말과 이러한 표현 대신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말을 종이에 썼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제공

아들의 ‘맨박스’를 살펴보자

김은혜 교사는 “‘남자는 ~하는 거야’ ‘남자는 ~하면 안 돼’라는 표현은 젠더 교육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자다운 것은 남자아이들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학습하는 것으로, 보통 ‘맨박스’라고 말한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을 잘못 수용하면 아이 자신도 힘들어진다.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는 것이 강한 것, 여자를 무시하는 게 강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돼 맨박스에 더욱 갇히게 된다. “정말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 친절한 사람이다”라고 보호자가 계속 말해줘야 한다. 김은혜 교사는 “자신이 남자라고 해서 사회에서 말하는 남자다운 행동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운동을 못해도 괜찮고, 슬프거나 아플 때는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먼저 보호자부터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라는 비합리적 관용과 ‘남자애가 왜 그래?'라는 이중적인 엄격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청소와 정리정돈을 못해도 ‘남자애가 다 그렇지 뭐’라는 인식 속에서 자라다 보면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날 위해 해줘야 한다’라는 생각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돌봄 노동이 ‘하찮은 일’로 평가절하되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와 정리정돈이 여자의 일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나와 다른 성별에 대한 존중감도 사라지게 된다. 김은혜 교사는 “10년 넘게 수백명의 남학생을 가르치면서 ‘남자애니까 원래 그렇지 뭐’라는 인식이 강한 분야의 활동일수록 남학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사가 지도해도 자신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고 넘겨버린다”고 말했다. “‘남학생이라고 방이 지저분할 이유는 없다’라는 말과 함께 가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게 좋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렇게 성평등적 관점에서 남자아이를 대하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변화의 모습을 보입니다.”

딸의 자존감을 지켜줘야

김은혜 교사는 “아들 양육이 딸보다 훨씬 힘든 것은 아들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남자다움’이라는 성역할을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회에 퍼진 성별에 따른 육아 통념이 너무 굳건해 최근에는 ‘아들 키우는 방법은 따로 있다’며 성차별을 더욱 견고히 하는 교육 자료도 많이 생겼다.

김은혜 교사는 “결국 아들을 둔 보호자들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숙명’으로 생각하고 아이의 행동 패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딸을 가진 보호자는 딸을 키울 때 ‘이 사회가 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생각하며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딸의 행동, 외모, 성격 등이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차별적 여성상에 적합한지 계속 검열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딸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함정이다. 딸의 몸을 보고 살을 빼라거나, 부모의 감정을 알아서 알아차려야 한다거나 옷을 ‘얌전하게’ 입으라는 말 등을 통해 보호자는 딸의 자존감을 갉아먹게 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젠더온’에는 초·중·고등학생과 성인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젠더 교육 콘텐츠가 올라와 있다. ‘젠더온’ 갈무리

‘젠더온’ 채널과추천 웹툰 활용을

젠더 교육 전문가인 김은혜 교사와 김수진 교사의 추천 콘텐츠를 활용해보자. 김수진 교사는 “아이들에게 안 좋아 보이는 채널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오히려 유익한 채널을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길 권한다”고 말했다.

두 교사는 유튜브 채널 <젠더온>을 ‘강추’했다. 유튜브에서 ‘젠더온’을 검색해 채널을 구독해두면 활용하기 더욱 편하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이 채널에는 초·중·고등학생뿐 아니라 보호자 등 성인을 위한 젠더 교육, 성평등 교육 자료가 영상으로 잘 정리돼 있다.

<젠더온> 채널 검색창에 다양한 검색어를 넣어 자료를 찾아봐도 좋다. 김은혜 교사는 ‘초등생 성차별 언행지도법 1~2편’ ‘일상 속 혐오, 서로에게 좋을 게 뭐지?’ ‘초등생들의 혐오 놀이’ 등을 추천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웹툰에서도 좋은 작품이 많아요. 네이버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와 다음 웹툰 〈당신도 보정해 드릴까요?>도 좋은 젠더 교육 자료입니다. 아이들이 외모 지상주의와 다이어트, 화장 등에 대한 젠더적 관점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지요. 넷플릭스 <힐다>와 영화 <인크레더블2>, 동화책 <종이 봉지 공주>(비룡소)도 추천합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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