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사면 말할 때 아니다"..심경 복잡한 이낙연 "대통령 뜻 존중"

박효목기자 2021. 1. 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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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에 대해 “두 분의 전임 대통령이 지금 수감돼 있는 이 사실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태”라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이 연초 제기한 사면론을 둘러싸고 여론이 부정적으로 기울자 ‘국민공감대 없는 사면은 시기상조’라며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 다만 문 대통령은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마 더 깊은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여론을 봐가면서 임기 내 사면을 단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 ‘국민 공감대’ 조건으로 임기 말 사면 가능성

이날 사면론 관련 질문을 받은 문 대통령은 “사면의 문제는…”이라고 운을 뗀 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3초 간 침묵했다. 이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냥 솔직히 제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며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재판 절차가 이제 막 끝났다. 엄청난 국정농단과 권력형 비리가 사실로 확인됐고 그로 인해 국가적 피해가 막심했다”며 “그런데 그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하는 것은 비록 사면이 대통령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하물며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또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사면을 요구하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상식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적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과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사면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다만 전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도 많이 있고, 그분들 가운데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아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며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마도 더 깊은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올 것”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금 미리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사면에 대한) 대전제는 국민들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면을 둘러싸고 또 다시 극심한 국론에 분열이 있다면 그것은 통합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통합을 해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사면과 관련해서도 “아직까지는 정치인 사면에 대해 검토한 적이 없다”며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과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통합을 명분으로 해야는 사면에 대해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상황에선 오히려 국론 분열만 야기할 수 있다”며 “신년 기자회견부터 갈등 리스크를 키울 수는 없지 않느냐. 사면은 당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사면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지 않은 만큼 일각에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문 대통령이 국민통합과 포용을 명분으로 사면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 모두 ‘통합’을 화두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면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을 수 있다”며 “대통령이 그때 다시 사면 여부를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이자 대선이 끝난 직후인 1997년 12월 20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논의한 뒤 같은 달 22일 사면을 단행했다.

● 심경 복잡한 이낙연 “대통령 뜻 존중”

문 대통령이 일단 사면을 유보함에 따라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서 새해벽두부터 사면 카드를 던졌던 이 대표도 어느 정도 정치적 타격이 입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와 함께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이 대표는 문 대통령의 “재판 절차가 이제 막 끝났다” “사면을 둘러싸고 또다시 극심한 국론 분열이 있다면” 등의 발언에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이 대표는 참배 뒤 “(사면론에 대해)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고 대통령 말씀으로 그 문제는 매듭지어져야 한다”고만 짧게 말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11월 1일 이후 80일 만에 광주를 찾자 사면론 이후 떨어진 호남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사면론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든 광주 시민들에게 둘러싸이기도 했다

야권은 사면에 대한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8일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국민 통합을 위해 결단할 문제지 정치적 고려로 오래 끌 일은 아니다”라며 “신속한 사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친이(친이명박)계의 좌장인 이재오 전 의원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반대편 국민들까지 포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사면을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박효목기자 tree624@donga.com

최혜령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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