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그들에게 닥칠 미래..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보고 / 김동수

한겨레 입력 2021. 1. 18. 17:46 수정 2021. 1. 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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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ㅣ 기록노동자·<유령들>(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엘지(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재현이다. 뼈아픈 일이다.

그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청은 그에 대한 답으로 기존 업체와의 계약 만료를 선택했다. 새롭게 입찰된 업체는 기존 업체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을 고용 승계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도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계약이 종료하거나 중도에 해지되어 수급사업주가 변경되는 경우에 고용승계 등의 방법으로 직전 수급사업주의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고용 및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전원 해고됐다. 새로 입찰됐다는 용역업체가 묘하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됐을 당시 관련 업체라고 한다. 단지 우연일까. 청소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서였던 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온전히 복직을 해도,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제도 탓에 또 다른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 산통을 깨는 일 같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일종의 경험칙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ㄱ대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그 사례다.

그들도 민주노총에 적을 두고 노조를 조직했다. 인간다운 삶을 꿈꿨다. 처음으로 업체와 교섭을 해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그런데 얼마 후 제2노조가 탄생했다. 비노조원이었던 이들이 모였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업체 쪽과 친한 사이였다. 처음엔 소수였다. 그들은 사사건건 민주노조원들을 회유했다. “우리한테 오면 편하다” “왜 굳이 그쪽에 남아서 농성을 하느냐” “학교와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해줄 거다” “우리만 믿어라”. 용역반장도 합세했다. “청소를 왜 이따위로 하느냐” “해고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알게 모르게 제2노조 쪽을 편들었다. 사측은 매번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어용노조를 조직하고 관리한다는 정황을 흘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제2노조를 어용이라 부르는 이유다. 제2노조는 결국 민주노조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으로 반수를 넘긴 다수노조가 됐다. 제2노조가 다수노조로 바뀐 이후 ㄱ대학의 노동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다른 곳도 과정만 다를 뿐이지, 결과는 같다. 노조가 들어선 서울권 대학 상당수는 이러한 절차를 밟았다. 마치 정형화된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 사측이 어용노조를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된 곳도 있다.

그렇다면 ‘사측은 굳이 왜 관리하기도 힘든 노조를 만들려고 할까’란 의문이 들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사업장에 노조가 두개 이상 존재할 경우, 교섭창구를 한곳으로 단일화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전체 인원 중 과반의 노조원을 보유한 노조나 연합체가 사용자와 유일하게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러니 원청이나 그의 바지사장인 용역업체 입장에서 ‘자기 말 잘 듣는 노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사측은 어용노조를 통해 다른 이들의 임금인상 주장이나 노동복지 요구를 억제할 수 있다. ‘무노조 경영’을 할 수 없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짜 노조’보다 상황관리가 가능한 ‘가짜 노조’를 스스로 키우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그야말로 플랜비(B)다.

노조 파괴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중에서도 시행된 지 이제 10년째를 바라보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측이 노노갈등을 유발해 말 잘 안 듣는 노조를 합법적으로 파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ㄱ대학의 사례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에게도 닥칠지 모를 미래다. 사측에서 그들을 엘지트윈타워가 아니라 다른 건물로 복직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쩌면 이 제안은 노조원들을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해서 사측과의 교섭 자체를 최대한 막아보려는 속셈은 아닐까.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한 노조 와해의 전초전일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고 더 나은 대안을 논의해야 할 때다.

나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로 복귀해서 그동안 느꼈던 비인간적인 대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용노조의 방해 없이 사용자와 당당히 교섭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살맛 나는 일터가 되길 바란다. 그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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