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트럼프, 공화당을 한계로 몰았나

송영규 기자 2021. 1. 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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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트럼프의 의사당 폭력 조장에도
탄핵 찬성 공화 의원 고작10명
과거의 연방당·휘그당과 같이
지지기반 잃고 쇠락의 길 갈듯
파리드 자카리아
[서울경제] 미국의 정치판을 뒤흔든 지난 몇 주간의 사태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아닌 공화당의 행동이었다. 트럼프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거부한 채 극단주의와 폭력을 조장하는 등 자신이 예고했던 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에도 트럼프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하원 의원은 고작 10명에 불과했다. 의회 침탈 사태가 발생한 몇 시간 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케빈 매카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대다수가 폭도들의 요구대로 대선 결과 최종 인준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합법적인 선거를 무효화하고 결과적으로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려 시도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트럼프를 향한 이 같은 굴종적 충성심이 혹여 다른 동료 의원들의 외면을 자초하고 당을 깨지기 직전의 상태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정당이 영원하리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당 역시 탄생과 소멸의 길을 걷는다. 미국 최초의 정당은 알렉산더 해밀턴과 존 애덤스가 관여한 ‘연방당(Federalist Party)’이었다. 그러나 연방당은 정도를 이탈한 채 권위주의로 빠져들었고 결국 이념적 일관성, 혹은 온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정당은 지난 1812년에 발발한 영미전쟁에 반대하다 반역의 도당으로 몰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미국 의사당이 처음 난입 사태를 겪은 것도 바로 이때다.)

휘그당의 몰락은 오늘날과 더 유사하다. 앤드루 잭슨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휘그당은 노예제 반대론자들과 찬성론자들을 모두 품고 있었다. 1848년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해 휘그당은 노예 소유주로 정치 문외한인 재커리 테일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지만 당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테일러는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후보 지명은 노예제 반대 세력의 탈당으로 이어졌다. 탈당한 세력은 새로 창당된 공화당에 합세했고 힘을 잃은 휘그당은 1850년대 말 망각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정당사가 오늘날에도 반복될까. 공화당은 자유의지론자, 복음주의자, 지방분권 옹호론자와 인종주의자 등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불편한 동거를 해온 정당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당내 분열을 용하게도 봉합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두 가지 요인이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첫 번째는 이라크전과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이로 인해 공화당은 위세가 꺾였고 거친 행동과 인종적 수사를 앞세운 트럼프가 신망을 잃은 당내 엘리트들 대신 기반 지지층에 군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두 번째는 공화당이 의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아니라는 당 지도자들의 의식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여덟 번의 대통령 선거 중 공화당 후보가 직접 투표에서 승리한 것은 9·11 테러 참사와 이라크전 초반의 여파 속에 치러진 2014년 대선 단 한 번뿐이다. 이런 추세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선거인단 제도와 인구 비례를 따르지 않는 상원 의석 배정, 악착같이 추진해온 게리맨더링과 유권자 억압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과반수의 득표를 얻지 못하고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공화당은 과반수의 국민과 전국의 엘리트들 및 주류 언론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됐다, 대신 그들만의 사실과 이론 및 영웅을 만들어내는 소형 생태계를 창조했고 그 안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태계는 쪼개지고 있다. 공화당 지지 기반에 허구와 절반의 진실 및 완전한 거짓을 불어넣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폭스뉴스는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다. 뒤를 이은 뉴스맥스와 OAN은 폭스뉴스마저 외면한 판타지 세계에서 판을 벌인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공화당 기반이 큰 폭은 아니지만 상당한 정도로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분적으로는 장기적인 인구 변화의 문제이지만 트럼프의 탓이기도 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트럼프의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고 무당파 성인 중 50%가 그를 백악관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 동의했다. 지난 선거에서 경합주로 꼽힌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은 지금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트럼프를 끌어안자니 차기 선거에서 후보 지명을 받기 어렵고 멀리하자니 선거에서 당선되기 힘들다.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정치 역학을 목격하게 될지 모른다.

물론 엘리트층과 보통 유권자층 모두에서 트럼프 일가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고 당을 등지는 공화당원들이 더러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거부한 채 음모론에 심취한 자들과 자신들의 무력감에 분노하고 극단주의를 지지하는 자들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까지 마다하지 않는 무리에 의해 장악될 것이다. 의회 내 공화당원들의 미래는 지난주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의 미래와 상당히 닮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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