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위 제안한 정준영 판사.."실효성 없다"며 구속

정희영,홍혜진 2021. 1. 18. 17: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행유예 관측 깨고 실형
재판부, 파기환송심 첫재판서
신경영 선언 거론하며 쓴소리
준법감시위 출범으로 이어져
"李, 준법경영 의지 보였지만
구체적 재발방지 방안 미흡"
뇌물 86억원도 그대로 인정
삼성측 "재판부 판단에 유감"

◆ 이재용 재구속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굳은 표정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법원이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재구속한 데는 재판부 지시에 따라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재판 초기부터 이 부회장에게 '재발 방지'를 강조하며 이러한 노력을 양형 사유로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에 따라 삼성은 작년 2월 준법감시위를 출범했다. 그러나 준법감시위 평가를 맡은 전문심리위원들이 삼성 경영진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고 결국 최후의 보루였던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 구속을 막지는 못했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 약 3년 만에 다시 법정 구속됐다.

18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뇌물공여 혐의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재판부가 주문한 재발 방지 대책의 실효성이었다. 삼성은 재판부 주문을 받아들여 준법감시위를 출범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다. 이 부회장도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자녀들에게 삼성그룹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결국 재판부는 박영수 특검팀 손을 들어줬다.

뇌물공여·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묵시적 청탁 성격의 뇌물액 86억원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유지했다. 특경법 제3조는 횡령액이 50억원이 넘으면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인정해 형을 감경하지 않으면 실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정준영 재판장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이 부회장의 진정성과 노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함은 분명하다"면서도 "새로운 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기는 어려워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한 예방과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에 대한 준법감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에게는 "준법경영 의지를 진정성 있게 보여줬다"며 "새로운 준법감시제는 실효성 기준에서 미흡한 점이 있으나 더 큰 도약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대한민국 기업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측은 재판이 끝난 뒤 "본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재판부 판단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54·사법연수원 20기)는 2019년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같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이 크다"며 "심리 중에도 총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1993년 만 51세였던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선언으로 위기를 극복했는데 올해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가"라며 쓴소리를 했다. 이어 2·3회 공판에서도 "외부 요구에 응하지 않으려면 그룹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를 출범해 의지를 드러냈지만 결과는 이 부회장 재구속으로 이어졌다.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하기 전에도 회복적 사법을 강조해 왔다. 2013년 발표한 논문 '치유와 책임 그리고 통합, 우리가 회복적 사법을 만날 때까지'에서는 "가해자의 변화를 통해 피해자는 상처를 치유받고 피해자도 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 보고서를 올리는 등 과제를 이행한 음주 뺑소니범을 집행유예로 감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정희영 기자 / 홍혜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