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삼중수소 논란을 바라보는 한 화학자의 넋두리 / 김영독

한겨레 2021. 1. 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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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삼중수소 논란

김영독 ㅣ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

최근 월성 원전의 삼중수소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월성 원전 부지 내 고인 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의 농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큰 문제이며 원전을 폐기하여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는 정상적인 원전 운영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이 삼중수소로 오염된 물이 원전 외부로 배출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최근 월성 주민들의 소변검사 결과 검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바나나 몇개 또는 멸치 몇그램을 섭취한 경우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언론 보도들이 있다. 자연계에는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있는데, 그중 바나나나 멸치에는 칼륨-40이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칼륨-40의 방사성 붕괴에 인체가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소변에서 검출된 삼중수소에 의한 방사선 노출량이 바나나나 멸치의 칼륨-40에 의한 방사선 노출량과 유사하기 때문에 원전에 의한 오염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원전 내부에서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로 오염된 물이 검출되었다는 것과 월성 주민들의 소변검사 결과 삼중수소 검출량이 바나나나 멸치 소량의 방사성 물질 양과 유사하다는 두가지의 사실을 분리해서 논의했으면 좋겠다. 이 두가지가 뒤엉키면서 이상한 비과학적인 논의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먼저 원전 내부에서 삼중수소 오염도가 높은 물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사실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원전 운영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여부와 이 오염수가 외부로 배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집중해서 논의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된다.

월성 주민들의 소변검사 결과 나타난 방사성 물질의 양이 바나나나 멸치 소량의 방사성 물질 양과 유사하다는 결과도 사실로 여겨질 수 있으며 여기서 도출된 수치 자체를 왜곡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를 강조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본다. 원전에서 노출되었을 수도 있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와 바나나나 멸치에 있는 방사성 물질인 칼륨-40은 화학적으로는 다른 물질인데, 삼중수소와 칼륨-40의 인체 내 거동이 같다고 볼 수 있을까? 혹시 칼륨-40은 인체에 유입되더라도 모두 쉽게 배출될 수 있는 반면 삼중수소 중 일부는 인체 특정한 위치에 오랜 기간 남아서 더 유해한 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있을까? 혹시 인체에 유입된 삼중수소의 일부는 (극소량이라도) 인체 내부에 더 오래 남아서 유해한 작용을 하는데 이것이 소변검사에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 일시적으로 삼중수소가 인체에 유입되었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 소변검사가 이루어졌다면, 소변검사 결과가 인체 방사성 물질의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소변검사라는 것이 실험실에서의 연구 결과처럼 매일 재현성 있게 나오진 않을 텐데, 그런 검사는 몇명에 대해 얼마나 자주 실행해 결과를 도출할 때 신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화학자의 순진한 질문들에 대해 아마도 의과학자들이라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에는 수많은 전문 분야가 있으며, 어떤 전문가도 사실 과학의 모든 분야를 다 아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연구해온 필자는 삼중수소에 대한 논란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마나 과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며, 과학 안에서 여전히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것 같아서 조금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라도 현대 과학이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들이 현실에서는 벌어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피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 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도 과학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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