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화폭, 치열한 삶.. '까치 그리는 작가' 장욱진을 반추하다

파이낸셜뉴스 2021. 1. 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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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전쟁통에 그렸던 '자화상'
유작 '밤과 노인' 등 50점 전시
집·가족·자연 테마로 열려
현대화랑서 내달 28일까지
장욱진 '자화상'(1951년) /현대화랑 제공
경기 덕소 화실에서 지내던 시절 새벽산책 중인 화가 장욱진. 사진=강운구
장욱진 '가로수'(1978년) /현대화랑제공
"여름의 강가에서 부서진 햇빛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면 위에 떠도는 아지랑이를 타고 동화가 들려올 것 같다." 화가 장욱진(1917~1990)의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첫 이야기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현대문학'에 1965년 기고한 내용이니 서울대 미대 교수직(1954∼1960)을 내려놓고 경기도 한강변 덕소에 지은 화실에서 작업하던 중간 쓴 글일테다. "물장구를 치며 나체로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장욱진은 자신을 '까치 그리는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한국 추상화 거장 김환기, 유영국과 같은 시기 일본 유학을 했지만 이들과는 전혀 다른 소박한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독보적인 한국미를 구축했다. 그는 아이의 눈으로 본 순수와 낭만의 세계를 화폭으로 옮겼다. '동산'이라는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꾸는 꿈의 세계는 다르다. 나의 꿈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 위에 집이 있고 송아지와 개가 있고,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지난해 예정됐다가 올해로 연기된 그의 30주기 기념전이 지금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을 테마로 그의 대표작 50점이 화랑을 가득 채웠다.

전시는 '자화상'(1951년)에서 출발한다. 드넓은 황금빛 벌판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길을 따라 유유히 걸어오는 신사가 자신이다. 세련된 연미복을 입고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모자를 들고섰다.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중 잠시 충북 연기 고향집에 들렀다가 모처럼 가지게 된 안락의 시간, 물감 몇 개로 종이에다 작업한 그림이다. 그런데 전쟁통에 이 풍성한 벌판은 무엇이며 난데없는 연미복이라니. 그는 뒷날 '자화상의 변'에서 "대자연의 완전 고독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라고 썼다. "하늘엔 오색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풍성한 황금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자연속에 나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고독을 즐긴 이 자유인을 지탱시킨 힘은 역시 가족이다. 덕소 시절 이런 고백을 했다. "부지런히 캔버스를 마저 채워야지. 끝나는대로 가족에게로 뛰어가야지. 그러고는 꼭 한잔의 술을 집사람한테 받아야지." 당시 그린 '가족도'(1972년)는 손바닥만한 크기(7.5x14.8㎝) 그림인데 이 작은 공간으로 가족의 애틋함을 다 담아낸다. 네모난 집,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네 명의 가족, 집 좌우를 지키는 초록나무, 지붕 위를 나는 네 마리 까치. 실물을 보면 그 기막힌 사이즈에 놀라고 더 이상 더 필요한 게 없어보이는 충만한 구성에 또 놀란다.

화가는 12년을 지냈던 덕소 화실을 정리하고 서울 명륜동(1975∼1979)으로 옮겨 가족과 함께 살았다. 이 무렵 그림속 가족들은 서서히 집 밖으로 나간다. '가로수'(1978년)를 보자. 줄지어 서있는 네 그루 늘씬한 미루나무 꼭대기에 집과 정자가 있다. 나무 사이로 가족들이 당당히 줄지어 걸어간다. 맨앞 수염을 치켜든 아버지, 의기양양 뒤를 잇는 부인, 아이 한명이 따라걷고 강아지, 소가 뒤따라른다. 행복한 가족의 천진난만한 행렬이다.

"나는 심플하다.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고 말한 작가는 작업에선 누구보다 치열했다. "철저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철저하게 사물을 보는 눈, 철저한 작업, 철저한 자유… 나는 하루 네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 그 이상은 낭비이기 때문이다"(새벽의 세계),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나의 고백)

유작 '밤과 노인'(1990년)은 이런 작가의 다짐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할 작품이다. 길을 따라 한 아이가 힘차게 달려나가고 흰옷 입은 노인은 뒷짐을 진 채 언덕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노인은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한없이 가벼워질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평생 화가와 함께한 까치도 생을 다한 듯 몸이 비었다. 쌩 달려나가는 아이와 좌우 푸른 나무에만 생기가 돈다. 화가는 명륜동 이후 충북 수안보(1980∼1985)을 거쳐 마지막 5년은 경기 용인 신갈(1986∼1990)에서 보냈다. 초가삼간을 개조해 만든 신갈 화실에서 평생의 그림 720여점 중 3분의 1에 달하는 220여점을 작업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미의 승리를 확신하고 캔버스를 향해 감행하는 영혼의 도전이 아닐까."(나의 고백) 장욱진은 마지막까지 그렇게 창작열을 불태웠다. 전시는 내달 28일까지.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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