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딜레마'에 빠진 한국 외교

한예경 2021. 1. 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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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사무총장 사실상 불발
아프리카·유럽 외교 부담만
통상본부 "美 지지 변함없어"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에 출마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놓고 정부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WTO 측은 지난해 11월 최종 선거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추대할 예정이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지지를 등에 업은 유명희 후보가 '버티기'에 나서면서 사무총장 선출 절차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18일 외교가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명희 본부장이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선거전에서 물러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전에 계속 남아 있을 경우 한국의 아프리카·유럽 외교에 짐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가 고위 인사는 "우리 스스로 명예롭게 물러서면서 WTO가 새로운 수장을 뽑을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외교적 지혜"라면서 "(유 본부장이) 계속해서 남아 있으면 한국 외교에 대한 불신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WTO 차기 사무총장 선출 절차는 지난해 6월 공식적으로 시작해 3단계 선거전을 거쳐 지난해 11월 최종 컨센서스(의견 일치) 방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측 반대로 최종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선거 절차가 중단됐다. 그런 사이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판이 바뀌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외교부도 진퇴양난이다. 외교부는 그동안 90개국 정상들과 통화·친서 교환 등을 주선하면서 '유명희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모든 외교 자원을 총동원했으나 막상 유 본부장이 한국 외교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한 주요 세력은 유럽연합(EU)과 아프리카 대륙이다. 만약 WTO가 이번 선거전은 컨센서스가 어렵기 때문에 이대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선거를 치르겠다고 하면 기존 후보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아프리카 대륙 후보가 한국 때문에 WTO 사무총장 선출에 실패하게 되는 셈이다. 향후 한국 외교가 아프리카와 관계를 도모하는 데 감당하기 힘든 큰 짐을 떠안을 수도 있다. 이번 건으로 다른 국제기구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지지를 받는 데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 본부장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자주의를 강조해 왔던 바이든 신임 대통령 임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데 트럼프 행정부 잔재로 남아 있는 것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간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며 WTO를 탈퇴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반면 바이든 신임 대통령은 다자간 무역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무너진 국제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통상교섭본부 측은 이에 대해 "최근 유명희 본부장이 전·현직 미국 통상 라인을 만났지만 미국의 지지 의사엔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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