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칼럼] 이재용 실형, '정경유착 흑역사' 종지부 찍자

안재승 입력 2021. 1. 18. 16:56 수정 2021. 1. 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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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칼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열린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재용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준법감시위원회와 관련해 “아직 인정받거나 자랑할 만한 변화는 아니지만 이제 시작이고, 과거로 돌아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비록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면서 한 발언이지만, 실형을 받았어도 반드시 지키기 바란다. 이 부회장 자신과 삼성을 위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안재승ㅣ논설위원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정준영 재판장의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 진행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 부회장은 끝내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결했다. 논란의 대상이었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와 관련해선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양형 조건에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이 부회장 형량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으나,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최대 재벌의 정경유착에 단죄를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탁해 서로 부당한 이익을 주고받는 정경유착은 부정부패의 근원이다. 그리고 최고 정치권력인 대통령과 최고 경제권력인 삼성 총수가 거액의 뇌물과 경영권 승계를 주고받은 이 사건은 정경유착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정경유착의 중심에는 늘 삼성이 있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5·16 쿠데타 직후 ‘부정 축재자 1호’로 지목돼 구속될 처지에 놓였으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나 협조를 약속하고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전신)를 만들었다. 그 뒤로도 이병철 회장의 전두환 뇌물 제공, 이건희 회장의 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 제공,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로펌 수임료 대납 등으로 정경유착은 끊이지 않았고, 종국에는 이 부회장의 박 전 대통령 뇌물 제공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80여년의 삼성 역사에서 총수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검찰의 봐주기 수사,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통해 면죄부를 받았다. 이번 판결이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하며 재벌 총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대원칙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법치주의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이번 판결이 지니는 의미를 다른 모든 재벌 총수들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정경제 3법’에 반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스스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도 총수의, 총수를 위한, 총수에 의한 ‘황제 경영’에서 비롯됐다. 누군가 옆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말렸다면 이 부회장이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일사불란하게 이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작업을 처리했다. 이 부회장이 재판부의 권고로 뒤늦게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준법경영을 선언했으나 너무 늦었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삼성 총수들의 불법과 비리를 감시·비판하지 않았다. 아니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합리화했다. 삼성 총수들이 사법적 단죄를 받게 될 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기업하는 죄’ ‘삼성 역할론’ ‘경제 위기론’ 등을 내세워 호위무사 노릇을 했다.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더 이상 재벌 총수와 기업을 동일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이 삼성 역시 이 부회장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오늘날의 삼성은 수많은 임직원과 주주, 협력사 등의 땀과 눈물이 모아져서 이뤄진 결과물이다.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과는 관계없는 개인 문제다. 세금을 내지 않고 자산 수백조원의 거대 그룹을 대물림하려는 데서 비롯된 범죄 행위다. 실형을 선고 받은 건 이 부회장과 측근들이지 ‘기업 삼성’이 아니다. 재벌 총수가 구속됐다고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은 적도 없고 재벌 총수가 풀려났다고 한국 경제가 살아난 적도 없다. 언론들이 더는 황당한 주장으로 국민들을 오도해선 안 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준법감시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실제로 회사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직 인정받거나 자랑할 만한 변화는 아니지만 이제 시작이고, 과거로 돌아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제가 책임지고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를 만들도록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면서 한 발언이지만, 실형을 받았어도 반드시 지키기 바란다. 이 부회장 자신과 삼성을 위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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