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들은 왜 총을 들었을까..카르텔 맞선 멕시코 여성 자경단
[경향신문]
두꺼운 철판을 덧대 무장한 트럭, 모래가 가득찬 하얀 포대를 쌓아 만든 검문소, 기관총을 들고 있는 여성들. 멕시코 중서부 미초아칸주의 엘테레로 마을 여성들이 카르텔(마약 유통·강도·살인 등을 일삼는 범죄조직)에 맞서 마을을 지키겠다며 무기를 들었다고 AP통신은 16일(현지시간) 전했다. 40여명의 여성만으로 이뤄진 이 자경단에는 임신부들도 있다. 이들은 총을 들고 마을 외곽을 순찰하며, 마을 입구로 다가오는 낮선 사람들을 검문한다.
여성들은 왜 총을 들었을까. 멕시코의 카르텔들은 조직원을 더 모으고, 마약을 운반할 때 ‘통행세’를 내지 않기 위해 다른 카르텔과 영역다툼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다. 뉴미초아칸파미얀 카르텔 등과 미초아칸주 등지에서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은 엘테레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살인과 납치 등 범죄를 저질러왔다. 이들은 카르텔 간의 싸움에 투입시킬 사람들을 납치하고, 카르텔 가입을 거절하거나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납치와 처형의 대상은 주로 남성이다. 엘테레로 자경단원들은 남성 가족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남은 주민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고 말한다. 14살 딸이 카르텔에 납치됐다는 한 자경단원은 AP통신에 “아이들과 가족이 사라지는 것을 더이상 볼 수 없다”며 “남은 이들을 목숨 걸고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텔의 뇌물 혹은 살해 협박에 매수된 지역 경찰이나 관료들은 카르텔의 횡포에 뒷짐을 지고 있다. 2018년에는 멕시코 연방경찰이 마약 카르텔의 범죄를 눈감아준 아카풀코시 지역의 경찰본부를 통째로 포위·수색하고 치안 유지 임무를 박탈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듬해 CJNG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미초아칸주 경찰 수십명을 매복공격해 살해했다.
정부마저 못 믿는 멕시코 시민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자경단을 조직하고, 총기 훈련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남부 게레로주 칠라파에서 5~15세 어린이도 자경단에 가입해 총기 훈련을 받았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정부는 불법으로 무기를 소지한 점, 법적 절차 없이 카르텔 조직원을 처형한다는 점을 들어 자경단 역시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엘테레로 마을의 자경단원은 AP통신에 “경찰이나 군이 와서 카르텔에 맞서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며 카르텔의 횡포에도 움직이지 않는 정부를 비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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