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잘 알고 사랑하도록 설계된 AI 사장은 어떨까?

강병규 안동MBC 프로듀서 2021. 1. 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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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강병규 안동MBC 프로듀서]

회사의 문제로 이사회에 부의할 중요한 일이 있어 MBC의 관계회사 업무를 총괄(?)한다는 부서에 사전 협의를 해 보고자 연락했던 모양이다. 돌아온 첫 마디가 '지역사 임원선임 시기'라는 이유로 긍정적이지는 않았나보다.

사실 오래전에 마련해서 직원들의 워크샵 공간이나 때로는 사원 복지를 위해 연수 시설로 사용해오던 시골의 폐교 건물과 부지를 매각해서 부족하지만 새로운 사업에 종잣돈으로 좀 써보려 했던 것이다. 닥쳐온 경영위기에서 어떻게든 견디고 다시 살아내서 제대로 된 지역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해보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1억의 제작비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한 시간짜리 고품격 다큐멘터리의 광고료가 제작비의 절반도 안되는 현실이라 돈 좀 벌어서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 보고자 하는 의도였다. 현재 임기가 끝나가는 지역사 사장이 교체되기 전에 급조해서 만든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검토한 끝에 거래가 성사되는 시점이 하필이면 지금이었던 것이다.

지역MBC로서는 이토록 중차대한 일이었는데 '임원선임 시기'가 발목을 잡을 뻔했던 모양이다. 결국 이사회에서는 전향적으로 검토를 시작해서 매각 승인과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후문이다.

수년째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고, 안식년 확대 시행에 명예퇴직까지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여러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현재 지역MBC의 실상이다.

하지만 MBC 본사의 현실은 좀 다른가 보다. 적폐청산작업 이후 벌써 두 번째 수장이 자리에 앉아있고, 지난해는 예상을 뒤엎고 무려 영업이익까지 달성해냈으며 채널 경쟁력도 점점 회복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MBC는 옛날 김재철 일당이 판치던 시대, 자율경영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던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무리한 것일까?

올해는 지난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돼 지방자치가 다시 복원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지난해 말 32년 만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지난 1월 12일 공포되었다.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지나 법의 효력이 시작된다. 개정 법안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시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구 100만 이상의 특례시부터 지방의회 정책지원 전문인력 운영, 지방의회 사무처 운영 및 인사권 독립, 주민에 대한 정보공개 등등 많은 변화를 가져올 개정 법안이기에 담대하고도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년에 있을 대선과 더불어 민선 8기 지방선거가 어느 지역이든 더욱 중요해졌다. 자치분권을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지역방송의 역할도 당연히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의미 있는 시기라는 것이 자명하다.

▲ 지역MBC 네트워크. 사진=MBC 홈페이지

지역MBC로서도 경영 위기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지역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놓칠 수 없는 핵심적이 한 해가 될 것이다. 또한 올해 들어 지역MBC는 80년대 후반에 입사했던 선배들이 정년을 맞거나 안식년에 들어가 있어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정권시기 7~8년을 자율경영은커녕 아무 일도 못하고 소위 '대주주'의 권한대로 좌지우지되었던 시절을 벗어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지금 '지역MBC 사장 공모'가 시작되었고 현재 그 절차가 진행 중이다.

MBC 본사는 사장 선임시 구성원과 시청자들에게 후보자들의 계획을 밝히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까지 마련해 놓았다. 비록 작년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목을 잡아버렸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일보한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지역은 어떤가?

지난 2018년 사장 선임 당시 도입된 제도가 있다. 노사동수로 구성된 '지역MBC 임원후보 추천위원회'가 이번에도 가동되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을 통해 지역사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모양새는 형식적으로나 갖춰져 있지만, 지역시청자들의 생각을 반영하거나 지역민들이 지역 공영방송사 사장 후보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없다. 아직 지역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라서 그런 것일까? 지역은 아직 미숙해서 스스로 그런 제도를 시행해도 적용이 불가능 할것이라 생각되어서 그런 것일까?

지역사의 어떤 구성원들은 차라리 AI가 와도 좋겠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넋두리삼아 내뱉기도 한다. '지역'이라는 곳은 놀러나 다니는 여행지라고 여겼던 사람들, 물 좋고 공기 좋아 한 번씩 다니러 가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 이외에는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또 점령군처럼 내려오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서서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지역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그래서 지역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AI사장을 원했을까?

지역MBC는 공적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공영방송이다. 지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역MBC에 그저 방송사 내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만 있는 사람이 수장으로 내려오면 되는 것일까? 그 객관은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금요일 오후가 되면 다시 자신의 '집과 가족'이 있는 서울로 가는 사장이 그 지역을 객관적으로 보고, 지역사회가 살아갈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지역방송이 지역사회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지방 권력의 감시자이자 지역공동체의 포털 같은 역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할 수 있을까?

지명된 이후 한 달 동안 '지역'과 관련된 교육을 받고 난 이후 사장으로 내려가게 하겠다는 보다 나아진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이 진전이라 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한 달이 그 동안의 과오와 오류를 모두 해소할 만큼 혁신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지명자들을 도대체 누가 교육시킬 것인가? 지역 구성원들이? 아니면 지역 시청자들이? 아니면 지역문제 전문가들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교육의 구체적인 그림을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길이 없다. 그렇게만 하면 수십 년 동안 캐캐묵어 온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을까? '낙하산'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지역 출신 사장'이 만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의 가치는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고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절차에 따르면 이제 다음 주면 15명의 새로운 지역MBC 사장들이 선임된다. 부디 AI 사장이 더 낫다는 자조적인 말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잘 진행되어 가길 바라면서,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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