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게임 규제, 달라진 시대상 반영해야

안호천 2021. 1. 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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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등학교 근처 만화책방의 이전 내지 업종 전환을 요구한 행정 당국의 처사는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만화에 대해 달라진 사회 의식을 심의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20여년 전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를 검찰이 기소하고 최종 대법에서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사건에 비해 최근 재판부의 판결은 문화 콘텐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 변화가 이뤄진 점이라는 매우 고무되는 일이다.

과거 국내 만화는 질이 낮고 선정성이 짙거나 폭력성의 수위가 이미 도를 넘어섰으며 독자를 기만하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압도했다. 그 결과 국내 만화 산업은 초토화됐다. 만화 창작자들은 자기 검열에 위축됐고, 이용자들은 빈자리를 차지한 일본 등 해외 만화로 눈길을 돌렸다. 이보다 앞서 판결과 더불어 웹툰 원작 드라마가 연속 제작되는 현상에서 만화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만화와 함께 사회악으로 취급되던 게임은 만화와 달리 아직 그러한 정부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과거 만화 산업에서 발생한 일이 그대로 현재 게임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게임 산업은 비대면 상황에서도 타격을 덜 받는 산업, 가상현실(VR)·증강현실(AR)과 같은 실감 기술 도입·개발과 인공지능(AI) 기술 활용 등 디지털 뉴딜 정책의 핵심 산업임을 확인했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영화나 음악이 이끌던 콘텐츠 산업이 게임 산업 중심으로 재편될 공산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게임은 중독물질, 사행성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게임 아이템 규제, 게임 광고 규제, 질병 코드화 등에 관해 준비하고 있는 법 정책을 보면 단편 현상의 감정 평가를 근거로 다양한 규제 방안이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뉴딜 정책을 펼치고, 청년정책 기본계획에서 청년콘텐츠기업 지원을 밝히고 있다. 문화 콘텐츠 분야 청년들의 도전과 혁신을 응원하기 위한 금융 지원도 한다. 반면에 규제 정책 측면에서는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국내 규제는 국내 인디 개발자, 게임 스타트업, 중소개발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의법 처벌이 뒤따르지만 해외 사업자에는 법 집행력이 실제로 뒤따르지 않는다. 규제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게임 산업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한창 시기에 왕성하게 게임 콘텐츠 창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창작자에게 규제 준수 여부 검토 또는 미준수로 인한 처벌 대응으로 기회를 날리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만화 탄압 시절을 겪은 유명 만화가는 “이런 검열에 시달리다 보니 나중에 제대로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가 없더라, 걸리지 않을까 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규제는 준수 여력이 미흡한 이들에게 진입장벽으로 기능하는 속성이 있다. 셧다운제의 예에서 보듯 대증요법과 같은 정부 규제는 문제 해결에는 미흡한 반면 산업 육성 측면에서는 충분히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 게임과 같이 글로벌 서비스가 이뤄지는 IT 기반 콘텐츠 산업에서의 규제는 시민 자율성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용자·창작자와의 충분한 논의 및 상호 이해를 통한 수렴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강력한 정부 규제는 비교적 쉬운 문제 해결 방법일 수 있지만 현상을 직시해서 원인 파악 후 도출한 것이 아니라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들일 수 있다. 정부 규제 도입은 시장을 변모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변화된 시장을 되돌리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글로벌 경쟁이 극심한 IT 산업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정부는 표현물이자 창작물인 게임에 특정 비즈니스 모델을 강제해서 법으로 규제하기보다 다채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고 이용자의 합당한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부 규제와 자율 규제는 한정된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스포츠형 비즈니스'가 아니다. 신산업 성장, 이용자 권익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게임 산업과 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부 규제 및 자율 규제의 조화를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

조영기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 사무국장 ykcho@gs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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