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입양 취소·변경' 발언에 입양부모들 반발

이재호 2021. 1. 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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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쇼핑 아니다. 사과하라" 청와대 청원글 올라와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온·오프 혼합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안 질문을 하기 위해 번호판을 든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아동학대 해법으로 “입양을 취소하거나 입양 아동을 바꾸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입양부모들 사이에서 “입양은 쇼핑이 아니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사건’ 재발 방지책에 관한 질문을 받고 “사전에 입양하는 부모들이 충분히 입양을 감당할 수 있는지 잘 조사하고 (살펴야 한다)”고 말한 뒤 “초기에는 입양가정을 방문해 아이가 잘 적응해 있는지, 입양부모의 경우 마음이 변할 수 있어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랑 맞지 않을 경우 바꾼다든지 입양 자체는 위축하지 않고 활성화하면서 입양아를 구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입양부모들의 네트워크에서는 “입양을 놓고 취소나 아동 변경 등의 단어가 나온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입양부모는 기자회견 직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입양부모에게 사과하셔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렸다. 청원인은 “입양은 아이를 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거나 환불하는 쇼핑이 아니다”며 “(입양) 아이의 평생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양부모들은 큰 사랑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약 대통령님이 이런 말을 하기 전에 보건복지부와 같은 관련 부처와 이야기를 해본 것이라면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미래가 정말 암담하다”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이 입양부모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동이 입양과정에서 겪는 정신적·심리적 스트레스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례로 2016년 대구의 한 입양가정에서 목숨을 잃은 ㄱ(당시 4살)양의 사건 기록을 보면 ㄱ양은 2014년부터 두차례 입양과 파양 과정을 거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돌발행동 등을 보인 것으로 나온다. 문 대통령이 입양 아동이 어리기 때문에 가족·환경을 바뀌는 것에 쉽게 적응할 것으로 오판한 부분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입양 현장에선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국내 입양아동수가 감소하고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다른 가족에게 보낼 수 있는 것처럼 언급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국장은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입양부모들이 있는 대화방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쏟아졌다”며 “입양은 신성한 가족이 되는 결정으로 부모들이 진중하게 결정하고 있다. 쇼핑처럼 취소하고 교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바로가기: ‘입양아 교체’라니…논란 부른 문 대통령 ‘아동학대 해법’

청와대 청원글 전문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f122zp)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양부모님께 사과하셔야 합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님의 신년 기자회견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정인이의 사망과 관련하여, 입양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라 라는 말을 반복하신 것에 이어 오늘은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던지,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입양 아동과 맞지 않는 경우 등 아이 바꾼다든지 등 입양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관련 부처가) 세우길” 이라는 정말 무서운 말을 하셨더군요.

대통령님은 사회복지를 모르시니 저렇게 무서운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최소한 저 말을 하시기 전에 복지부와 같은 관련 부처와 이야기를 해보신 것일까요? 그렇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미래가 정말 암담합니다.

저 말씀은 결국 이번 아이의 사망이 아이를 죽인 살인자 양부모와 살인자에게 죽임을 당한 아이가 ‘맞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까? 아이를 바꿔주면 이 아이는 살고 바뀐 아이도 살았을까요?

대통령님. 입양이라는 것은 아이를 골라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양이라는 것은 아이를 사고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고 환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의 평생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양부모님들은 그 어떤 것과 비할 수도 없는 사랑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한 아이를 입양하는 것입니다. 친부모가 생명은 지켜주었지만 그 아이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나라에서도 지키지 못한 그 아이들을 그런 마음으로 입양하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보통의 양부모님들은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그 사람들이 양부모라기보다는 살인자라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요?

입양 사후관리 철저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의 대통령님 마저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그 양부모님을 저런 취급하시면 그 아이들은 대체 누구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까. 누가 과연 그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습니까.

부디 저 부분에 대해서만이라도 실언이었음을 인정하시고 아이들과 양부모님들께 사과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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