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삼중수소' 논란에 과학자들 "공장서 나오지 않은 차에 주차위반 딱지 붙인 격"

김윤수 기자 2021. 1. 1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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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등 원자력 전문가 4인 팩트체크
"기준치 18배 삼중수소 검출? 실제론 기준치 0.03%"
"1년간 우유 6L·바나나 6개 더 먹은 피폭 수준"
"민주당, 방사선량 측정기준 잘못 알고 비판한 것"

가동을 멈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연합뉴스

과학자들이 ‘경북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삼중수소(트리튬) 배출량이 인체에 위험한 수준’이라는 더불어민주당과 탈원전 진영의 주장에 "실제로는 인체에 무해한 수준인데 잘못된 기준을 적용해 오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용훈 카이스트(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출고되지 않은 차가 공장에 머물러 있는데 주차위반 딱지(스티커)를 붙인 격"이라고 비유했다.

18일 오전 11시 한국원자력학회와 대한방사선방어학회가 ‘월성 원전 삼중수소, 정말 위험한가?’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비대면 기자간담회에서 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정 교수를 포함해 이재기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 소장, 김희령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원자력공학과 교수,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핵의학교실 교수 등 원자력 전문가 4명이 발표자로 나섰다.

지난 7일 민주당은 "2019년 4월 월성 원전 지하 배수관 맨홀에서 삼중수소의 방사선량이 기준치의 18배에 달하는 물 1L당 71만3000베크렐(Bq)만큼 검출됐다"며 "사상초유의 방사성 물질 유출을 확인하지 못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감사원이 월성 원전의 조기폐쇄 결정 절차의 적법성을 두고 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감사 중인 가운데, 이런 비판이 나오면서 정치권은 물론 과학계와 환경단체 간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베크렐은 방사성 물질이 방출하는 방사선의 양을 말한다. 우리나라 규제당국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에서 배출 가능한 삼중수소의 양을 물 1L당 4만베크렐 이하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18배 많은 양이 월성 원전에서 검출됐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기준이 잘못됐다"며 반박했다. 원전 시설에는 삼중수소와 같은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저장조가 있고, 그 아래에 물을 모아두는 ‘집수정’이 있다. 저장조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집수정의 물에 섞일 수 있다. 외부 배출 시엔 삼중수소 농도가 낮아지도록 이 물을 다시 희석한다. 인체 유해성을 따지는 원안위 기준은 배출되는 물속 삼중수소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고, 집수정 속의 삼중수소량과는 무관하다.

18일 오전 11시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가 ‘월성 원전 삼중수소 위험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웨비나 캡처

이날 정 교수는 "민주당이 지적한 부분은 월성 원전 3호기의 집수정 중 하나에 71만3000베크렐의 삼중수소가 섞인 물이 발견됐다는 건데, 실제로 외부 배출 시에는 13베크렐(기준치의 0.0325%) 농도로 희석한다"며 "출고되지 않은 차(삼중수소가 섞인 물)가 공장(집수정)에 머물러 있는데 주차위반(삼중수소 과다 검출) 딱지를 붙인 격"이라고 설명했다.

‘1L당 13베크렐’의 유해성에 대해 이재기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 소장은 "자연 상태의 물(1~4베크렐)보다 3~13배, 우유(2.1베크렐)보다 6배 많은 방사선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원자력 규제당국(4만베크렐), 세계보건기구(WHO·1만베크렐), 캐나다 원자력 규제당국(7000베크렐), 미국 환경부(740베크렐) 기준보다도 낮은 한참 수치다.

정 교수는 물속 삼중수소가 내뿜는 방사선에 인체가 실제로 얼마나 피폭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체 피폭량은 ‘시버트(Sv)’라는 단위로 측정된다. 바나나 1개를 먹으면 0.1마이크로시버트(μSv·100만분의 1Sv)만큼 피폭된다. 정 교수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월성 주변 주민 495명, 931명의 삼중수소 피폭량을 조사한 결과 연간 최대 0.6μSv만큼 피폭된 것으로 나타났다. 1년간 바나나 6개를 먹은 정도라는 것이다.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핵의학교실 교수도 "연간 피폭량이 100밀리시버트(mSv·1000분의 1Sv)를 초과하면 암 발병률이 0.5%를 넘게 돼 위험하지만, 1mSv 미만은 비교적 안전하다"며 "그보다도 1000분의 1 수준인 μSv 단위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강 교수는 "방사선에 대한 공포가 우리나라 원자력을 죽이게 됐고, 화석연료 체제를 퇴출하지 못해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를 맞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18일 오전 발표 중인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핵의학교실 교수. /웨비나 캡처

앞서 과학자들과 비슷한 취지의 한수원과 원안위 해명에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라고 공세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삼중수소가 다른 사용후핵연료들과 비교해서 안전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삼중수소가 내뿜는 방사선량은 ‘칼륨-40’의 340분의 1, ‘세슘-137’의 720분의 1, ‘라돈’의 1만 5000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삼중수소는 인체에 들어오면 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특정 장기에 축적되지 않고, 반감기가 10일 정도로 짧다"라고 설명했다. 반감기는 방사성 물질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짧을수록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삼중수소는 자연에 없는 위험 물질"이라는 여당의 공격에 과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한다"라고 짧게 반박했다.

한수원과 학계의 해명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전날 원안위는 "민간 전문가 조사단을 꾸리는 대로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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