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인터뷰①] '사라진 명문 구단' 현대 유니콘스의 레전드 임선동

김현서 2021. 1. 1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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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부천] 김현서 기자= 전설의 92학번,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칠봉이

야구를 오랫동안 좋아한 팬이라면 빠지지 않는 단골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전설의 92학번'에 대한 이야기다. 박찬호, 정민철, 염종석, 故 조성민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이 동시에 나타난 해였다. 그 중에서도 고교야구 랭킹 1위를 차지한 이는 휘문고 시절부터 ‘제2의 선동열’로 평가받으며 LG 트윈스에 1차 지명을 받기도 했던 임선동이다.

프로에 와서는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후 진가를 발휘했다. 연세대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LG에 입단한 임선동은 첫해 11승을 기록하며 소소하게 활약하다 1999년 현대 유니폼으로 바꿔입고 이듬해인 2000시즌 18승(4패) 174탈삼진을 기록, 공동 다승왕과 탈삼진왕을 차지하며 고교시절의 명성을 이어갔다. 아울러 팀 내 에이스 김수경, 정민태와 함께 그해 현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왕조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후 2007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던 임선동은 현재 부천 진영고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야구 인생 제2막을 올린 ‘그 시절, 야구 천재’ 임선동 감독(49)을 만나 근황을 물어봤다.

#근황

Q. 부천 진영고 야구부 감독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연세대에서 투수 코치 생활을 6년 정도 했어요. 선수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긴 시간 동안) 코치 생활을 하다가 저의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마침 진영고 감독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운 좋게 덜컥 붙었죠.”

(임선동 감독은 현역 은퇴 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모교인 연세대에서 투수 코치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부터 부천 진영고의 지휘봉을 잡았다.)

Q. 감독 데뷔 시즌부터 청룡기에서 16강에 올랐는데 어떠셨나요?

“제가 학교에 와서 특별하게 한 건 없어요. 감독이 된 지 1년밖에 안 돼서 잘 모르지만 사실 (감독의 역할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거잖아요. 맛있는 반찬은 선수들이 다 차려야 하니까. 선수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죠. 지난 시즌 선수들의 기량이 좋았어요. 학교 지원도 있었고 삼박자가 맞았던 것 같아요.”

(진영고는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청룡기 대회에 참가한 이후 두 번째 출전 만에 16강의 기쁨을 누렸다.)

Q. 올 시즌 목표는요?

“올해는 8강까지 오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지금은 성적보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육성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Q. 롤모델로 삼은 지도자는 있으신가요?

“김성근 감독님. 야구의 신이라고 불리시잖아요. 저는 감독님의 승부사적 기질, 선수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적이신 모습들을 좋아해요.

Q.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를 한 적이 있었나요?

“연세대 시절에 투구 지도를 받은 적이 있어요. 원포인트 레슨이죠. 같은 팀이 된 적은 없었지만 프로에서 상대 팀 감독님으로 항상 먼발치에서 뵈었죠.”

Q. 현장으로 복귀할 생각은 없으셨나요?

“프로보다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현역 시절을 돌이켜보면 감독님이 바뀌면 (모든 게) 우르르 바뀌잖아요. 무언가를 조각하고 만들어가는 시점에 감독이 바뀌면 코치진도 바뀌어야 하는 상황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프로는 성적을 내기 위한 무대이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 목표이다 보니까 저의 성향하고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선수 시절

Q. 황금의 92학번 세대에서 랭킹 1위였잖아요. 본인을 제외한 동기생 중에서 야구를 잘했다고 생각한 선수가 있나요?

“그때 당시에는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기량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열심히 했던 선수는 아니에요.(웃음)“

Q.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천재적인 기질이?

“천재는 아니지만, 조금의 재능과 머리가 좀 좋았다고 할까. (웃음) 경기 운영을 잘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박찬호 선수나 조성민 선수 그리고 박재홍 선수 등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제가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사실 저는 (다른 선수들한테)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우리 학교 야구부 팀원들과 재밌게 즐겁게 운동했던 것 같아요.”

Q. 그리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칠봉이의 모티브가 감독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칠봉이 그분이 (극 중에서) 휘문고-연세대 투수 출신이고 해외 진출을 하신 분이잖아요. 가상의 선수였던 것 같아요. 모티브는 좀 있었던 것 같지만 여러 명이 섞이지 않았나 싶어요. 저라고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대학 시절) 외모는 좀 비슷하지 않나, 농담이긴 한데.(웃음)”

Q. 연대 시절 칠봉이만큼 인기남이었나요? (웃음)

“인기가? 글쎄요…(웃음) 그때 당시에는 농구부가 인기 많았어요. 우지원이나 이상민 선배, 문경은 선배가 인기 많았죠. 농구 체육관 안에 야구부 숙소와 도구실이 있어서 체육관 앞에 가면 여학생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농구부 인기가 너무 많으니까. 농구부 선수들이 선물 받으면 야구부 애들한테 나눠주고 그랬어요. 간식도 얻어먹고. (웃음) 제가 인기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Q. 프로 시절에는 2000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그때 우승했죠. 전체적으로 투타 밸런스가 좋았던 해였던 것 같아요. (팀이) 91승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발로) 나가면 거의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5이닝 정도만 막으면 타선이 점수를 많이 내주니까 던지기 굉장히 편했어요. 지금 두산의 유희관 같은? 던지기 편한! 타선이 워낙 좋으니까 승수 쌓기 좋았던 해였어요.”

Q. 김수경, 정민태 선수와 나란히 개인 18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강투수진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때 팀 내에서 경쟁 분위기도 있었나요?

“그렇죠. 아무래도 경쟁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18승을 같이 하고 난 후에 한 두 경기를 더 던질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김재박 감독님께서는 누구를 특정해서 더 시합을 내보내고 기회를 주는 것보다 모두 쉬게 했어요.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하신 감독님의 능력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 같아요. 한 팀에서 1, 2, 3선발이 다승왕을 차지한 게 처음이잖아요. 의미도 있는 것 같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 시즌이에요.”

사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캡처
영상 촬영, 편집= 전수연 PD

-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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