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에 던지는 작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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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시장경제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사실상 노동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과 동일한 내용 및 품질의 노동을 제공하는데 훨씬 적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면? 이런 상황이 딱히 시장이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같은 욕하기 좋은 추상적 대상 때문이 아니라 오래된 관행, 노동자의 소속 기업, 사회적 세력관계 등의 결과라면? 전혜원 기자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제로 〈시사IN〉 제697호의 커버스토리를 쓴 이유는 이와 관련된 답답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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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시장경제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사실상 노동으로 평가된다. 노동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대가를 받는 일·활동’이다. 각 개인의 사회적 존엄성은 자신의 노동이 시장에서 얼마나 큰 대가(임금)를 받는지에 크게 의존한다. 노동을 비싸게 팔면 전도유망한 젊은이라거나 훌륭한 부모로 여겨진다. 노동을 싸게 팔거나(저임금 노동자) 심지어 판매 자체가 어려우면(실업자), 인간적 존엄마저 잃게 된다. 사람이 노동으로 평가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젠가는 인류가 노동보다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엔 낚시하며, 저녁에 소를 몰고, 밤엔 문학을 비평’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유토피아가 도래하기 바란다. 한때 진보세력의 슬로건이었던 ‘노동해방’은 ‘노동의 해방’이라기보다 ‘노동으로부터 인간의 해방’ 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인간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와 거의 동의어라는 것은 냉엄한 현실이다. 노동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낮아서 감당해야 하는 형편없는 대우는 ‘이 세상에선 어쩔 수 없어’라며 체념한다고 치자.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과 동일한 내용 및 품질의 노동을 제공하는데 훨씬 적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면? 이런 상황이 딱히 시장이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같은 욕하기 좋은 추상적 대상 때문이 아니라 오래된 관행, 노동자의 소속 기업, 사회적 세력관계 등의 결과라면? 전혜원 기자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제로 〈시사IN〉 제697호의 커버스토리를 쓴 이유는 이와 관련된 답답함 때문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글로벌 차원에서 공인받은 사회·노동·인권 차원의 원칙이다. 시장경제 원리에도 적합하다. 한국의 자본이든 노동이든 정부든 모두 동의한다. 관련 법률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너무나 공공연하고 광범위하게 위반되어 이로 인한 차별과 인권유린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이런 현실을 진지하게 바꾸려는 세력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힘세고 조직된 집단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어느 정도 추진할 능력을 가졌지만 실행할 용의는 없다. 보편타당한 원칙에 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골적 반대가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대안을 내세우며 지금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일을 방기해버리는 것이 맞다. 공공연한 차별과 인권유린의 피해자인 청년, 여성, 불안정 노동자들에겐 힘도 조직도 없다. 정치권은 힘센 여론 주도층의 지지를 잃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용기와 전략을 갖지 못했다.
누구나 노동시장을 비판하지만 이를 확 바꿀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전혜원 기자가 답답해하는 이유다. 그러나 너무 뻔하게 펼쳐진 광범위하고 노골적인 불공정성까지 외면하는 태도는 민망하지 않은가. 일단 제697호의 커버스토리 기사들로 이 견고한 장벽에 작은 돌이라도 던져보려고 한다.
이종태 편집국장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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