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은 악녀?.. 內治 수행하며 정승 버금가는 관직이었다

나윤석 기자 2021. 1. 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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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사대부 집안 자손부터 노비·과부까지 출신이 다양했던 조선 후궁은 왕비와 함께 내치를 수행한 '여성 집단'이자 '정승'에 버금가는 관직이었다."

특히 내명부 조항이 '경국대전'의 첫 조항에 들어간 것은 "후궁이 왕비와 함께 내치를 수행하는 여성 집단"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결과다.

후궁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조선 초기 문종의 현덕왕후를 시작으로 안순왕후(예종), 폐비 윤씨와 정현왕후(성종), 장경왕후(중종), 장희빈(숙종) 등 6명은 후궁 출신으로 왕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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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장희빈’의 한 장면.

- 이미선 한신대 교수 ‘조선왕실의…’ 발간

후궁 175명 입궁·위상 조사

사대부 자손·노비 등 출신 다양

드라마서 이미지 왜곡 지나쳐

“명문 사대부 집안 자손부터 노비·과부까지 출신이 다양했던 조선 후궁은 왕비와 함께 내치를 수행한 ‘여성 집단’이자 ‘정승’에 버금가는 관직이었다.”

조선시대 후궁 175명의 입궁 경로와 역할·위상을 ‘전수 조사’한 연구서가 출간됐다. 이미선 한신대 한국사학과 외래교수가 쓴 ‘조선왕실의 후궁’(지식산업사)이다. 그동안 왕실의 주변부로만 인식된 후궁 제도의 변화 양상을 최초로 체계화한 왕실 여성사다. 이 교수는 “드라마 ‘장희빈’, 영화 ‘후궁: 제왕의 첩’ 같은 대중 사극은 후궁을 술수를 부리는 악녀 또는 왕의 성적 파트너로만 묘사했다”며 “연산군의 장녹수, 광해군의 김개시, 숙종의 장희빈 등은 정치 세력과 연계해 현실정치에 개입하기도 했는데 ‘후궁’이 악녀 이미지로 소비된 것은 대중문화가 이런 사례에만 주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선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실 소조정’의 일원이었던 후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은 후궁 개념을 ‘간택 후궁’과 ‘비간택 후궁’으로 나눈다. 간택 후궁은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간택·혼례 절차를 거쳐 입궁한 경우를, 비간택 후궁은 노비·과부·첩녀 등이 공식 절차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궁에 들어온 경우를 뜻한다. 저자는 “기존의 ‘간택 후궁-승은 후궁(내명부 품계를 받은 궁녀)’ 분류는 여러 입궁 경로와 출신 성분을 포괄하지 못해 ‘비간택 후궁’ 개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397년(태조 6) 첫 제정 후 몇 차례 개정된 ‘내명부제’는 후궁의 사적 지위를 공적 지위로 격상했다. 특히 내명부 조항이 ‘경국대전’의 첫 조항에 들어간 것은 “후궁이 왕비와 함께 내치를 수행하는 여성 집단”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결과다.

후궁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조선 초기 문종의 현덕왕후를 시작으로 안순왕후(예종), 폐비 윤씨와 정현왕후(성종), 장경왕후(중종), 장희빈(숙종) 등 6명은 후궁 출신으로 왕비에 올랐다. 다만 첫 번째 왕비가 죽은 뒤 ‘계비’가 된 5명의 간택 후궁과 달리 장희빈은 인현왕후와의 권력다툼 속에 왕비가 됐다는 차이가 있다. 후궁의 ‘왕비 예비자’ 자격은 숙종이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뒤 후궁의 정비 승격을 금지하는 교서를 반포하며 박탈됐다. 이에 따라 간택 후궁의 역할이 ‘후사 생산자’로 축소됐으나 왕비와 후궁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후궁에 대한 예우는 오히려 높아졌다. 실제로 계비가 되지 못해도 왕의 총애를 입고 자녀까지 출산하면 ‘정1품 빈’에까지 책봉됐는데 이는 ‘정승’의 지위에 비견되는 자리였다. 이들은 궁궐 바깥의 ‘제택(第宅·살림집)’과 200결 이상의 전지(田地) 등을 하사받았다. 책은 왕조별 후궁 숫자도 집계했다. 태종(19명)·광해군(14명)·성종(13명)·고종(12명) 순으로 후궁을 많이 뒀으며 현종·경종·순종은 단 한 명의 후궁도 맞지 않았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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