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나가고, 또 고소당하면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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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 갑질 횡포 알려요. 아버지가 월세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는데, 가게에서 밥을 해 먹으면 냄새가 난다고 밥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을 먹지 말라니요. 임대 계약을 할 땐 주차장을 써도 된다더니, 건물주가 차를 샀다고 주차장도 못 쓰게 합니다. 또 '월세 공제'를 신청한다고 하면 월세를 올리겠다고 협박합니다. 아버지가 이런 갑질을 당하니 딸로서 너무 속상하네요."
2018년 이하경(가명)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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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건물주 갑질 횡포 알려요. 아버지가 월세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는데, 가게에서 밥을 해 먹으면 냄새가 난다고 밥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을 먹지 말라니요. 임대 계약을 할 땐 주차장을 써도 된다더니, 건물주가 차를 샀다고 주차장도 못 쓰게 합니다. 또 ‘월세 공제’를 신청한다고 하면 월세를 올리겠다고 협박합니다. 아버지가 이런 갑질을 당하니 딸로서 너무 속상하네요.”
2018년 이하경(가명)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건물주는 글 속에 나온 내용 자체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게 상호를 밝힌 것을 문제 삼으며 하경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 결국 하경씨는 유죄 선고를 받고 벌금 30만원을 냈습니다.
제1346호 표지이야기에서는 하경씨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중 일부는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취재하면서 이 죄가 얼마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자기 검열’을 하게 하는지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건물주의 갑질, 재판 과정 등을 상세히 들려준 하경씨도 그랬습니다. 그는 대화 끝에 “이 기사가 나가고, 제가 또 고소당하면 어쩌죠?”라며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처벌 가능성을 떠나 ‘피의자’로서 수사기관에 출석해 조사받고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경씨를 비롯해 <한겨레21> 인터뷰에 응한 6명은 용기를 내주었습니다. 하경씨는 “이 죄가 왜 폐지돼야 하는지 많은 독자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이라며 실명을 밝히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다시 수사기관에 불려다닐까봐 인터뷰이 이름을 가명으로 기사를 쓰고 일부의 신원은 다르게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기사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에 공감하는 댓글이 꽤 달렸습니다. “나라에서 공과금 내라고 연락만 와도 걱정되는데 고소장을 받으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크겠는가. 이런 부분을 악용해서 자신이 잘못하고도 적반하장 남을 괴롭히는 데 쓰이는 법이다.”(acse****) “간통죄, 낙태죄도 폐지됐는데 ‘가짜 명예’가 중요한가? 최소한 자신의 법익을 침해받았다면 널리 알릴 자유는 있어야 한다.”(brow****)
물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비범죄화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부작용을 해결할 대안도 있고요. 개인의 명예는 형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되, 개인 사생활의 자유(프라이버시권)는 더 확대하자는 의견이 그것입니다. 또 민사소송을 활성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대안도 제시됩니다.
2021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1항)가 위헌인지를 따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옵니다. 헌재의 현명한 대답을 기다립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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