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의 특급논설] 이낙연표 이익공유제, 흐지부지에 한 표

곽인찬 입력 2021. 1. 18. 09:11 수정 2021. 1. 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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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은 기업이 살아가는 이유  
남이 손 대면 조건반사적 저항 
정운찬 vs 이건희 사례가 교훈 
사회적 연대는 증세가 정공법 
이 대표의 선의는 인정하지만 
힘들어도 스웨덴 모델 본받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코로나 이익공유제 실현 현장 방문의 일환으로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내 네이처컬렉션을 찾아 온라인몰에서 사전 구매한 상품을 수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제안한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19로 많은 이득을 얻은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을 기여해 한쪽을 돕는 다양한 방식을 우리 사회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밀어붙일 태세다. 국민의힘에선 '사회주의적 발상'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세다. 슬슬 조바심이 날 만하다. 이익공유제가 지지율 회복에 플러스가 될까. 글쎄다.

노무현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

1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자는 주장에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이때 집권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원이 총대를 멨다. 김 의원은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고 말했다.

논란 끝에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다. 노 대통령은 2005년 7월 "개인적으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당정이 논의를 하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분양원가 공개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토를 달았다. 결국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는 2006년 2월부터, 민간택지는 2007년 9월부터 시행됐다.

이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원가를 공개하는 조건을 까다롭게 바꿨다. 법은 그대로 뒀지만 사실상 폐지나 마찬가지다. 이걸 문재인정부가 2019년에 다시 살렸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TV에 나와 "마지막 퍼즐이라고 할 수 있는 분양가 상한제를 하게 됐다"며 "퍼즐이 맞춰졌으니까 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금 이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무현이 옳았다.

(출처=전국경제인연합회)/사진=뉴시스
사회적 연대, 이낙연의 선의

이낙연의 제안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돈을 많이 번 기업이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돕자는 취지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회사, 배달의민족·쿠팡 등 플랫폼 회사가 수혜자로 거론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익공유제는 실시도 어렵고, 설사 실시된다해도 오래 가지 못할 게 뻔하다.

먼저, 나는 이 대표의 선의를 믿는다. 이 대표는 연대와 통합이 트레이드 마크다. 작년 9월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하루가 급하다"며 "고통을 더 크게 겪는 국민을 먼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연대이고, 공정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 때 이 대표는 '우분투'를 말했다.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상대로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1등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음식을 다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모두 1등으로 들어와 음식을 나눠먹었다.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우분투'를 외쳤다. 남아프리카 반투족 말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연대와 협력을 상징하는 말로 우분투를 꼽았다. 그런데 어쩐지 우분투에선 낭만적인 냄새가 난다.

주요 업종별 2020년 ESG경영 관심도 비교 (제공=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사진=뉴시스
장사 원리와 맞지 않는 우분투

불행하게도 우분투는 경쟁이 일상화한 시장경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아프리카의 너른 초원에서만 빛을 낸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살아남는다. 그러자면 남을 눌러야 한다. 물론 돈을 벌면 자본가 지갑부터 두둑해진다. 그렇다고 이익이 다 자본가 몫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수천명, 수만명 주주들도 더 많은 배당을 원하고 주가가 오르기를 바란다. 종업원들은 임금 인상과 보너스를 기대한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고용도 창출하고 세금도 낸다.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ESG 경영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공동체를 두루 생각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큰 관심을 모으는 것도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근본 존재이유가 이윤 추구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돈을 벌지 못해 회사가 망하면 ESG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도 다 소용없다.

팔을 비틀어 잠깐 기업에 기부를 강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우회하는 일회성 기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박근혜정부에서 벌어진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는 반면교사다. 정치권은 늘 자발적 협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을로 살아가는 기업은 생각이 다르다. 정치권은 협조라고 쓰지만 기업은 강요라고 읽는다.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떠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선례: 정운찬 VS 이건희

지난 2011년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이건희 삼성 총수가 세게 부닥쳤다. 정 위원장은 원가절감 등을 통해 기업이 초과이익을 내면 협력사와 나눌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인지 공산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단박에 퇴짜를 놓았다. 결국 정운찬 아이디어는 없던 일이 됐다.

자본가 이건희를 매정한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경영자는 원래 매정한 사람들이다. 매정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지고, 뒤지면 주주한테 혼나고 종업원 일자리가 위태롭다. 이건희는 늘 위기를 말했다. 그 덕에 오늘의 삼성전자가 뿌리를 내렸다. 동학개미들은 삼전을 최고의 투자종목으로 친다. 이건희는 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를 다했다

얀테의 규범(Jante Law) (자료=위키피디어)
대안은 북유럽식 증세

기업 팔을 비틀어 억지로 공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자본가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 그럼 대안은 뭔가. 국민적 동의를 거쳐 강제력을 제도화하는 거다. 스웨덴 사민당은 대공황 직후부터 1974년까지 40여년에 걸친 장기집권했다. 이때 스웨덴식 고부담·고복지 체계를 정비했다. 페르 알빈 한손 총리(재임 1932~1946)는 국민의집(Folkhemmet)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식구끼리는 못났든 잘났든 서로 돌보며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스웨덴은 좋은 집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책을 후임자들이 이었다.

스웨덴은 얀테의 규범이 통하는 사회다. 이 규범은 모두 열가지가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뻐기지 말라는 거다. 남들보다 잘났다고 우쭐대는 순간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사민당이 국민의집을 지을 때 이 규범이 밑거름이 됐다.

문제는 돈이다. 능력이 천차만별인 이들이 어울려 살려면 돈이 든다. 스웨덴 정부는 시장에 자율을 보장했다. 대신 세금을 세게 매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스웨덴의 국민부담률은 2017년 44% 수준이다. 같은 해 한국은 약 27%다. 국민부담률은 세금에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합친 금액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수치다. 스웨덴식 복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돈을 맘껏 벌어라, 대신 국민의 집 관리비도 팍팍 내라.

법적 구속력에 기반한 보편적 증세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증세는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이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도 감히 증세 카드를 내놓지 못한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다. 고육책으로 내놓은 게 이익공유제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한 이익공유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자본가와 기업은 자기가 번 돈에 누군가 함부로 손을 대면 경기를 일으키게 돼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모가 죽은 쪽을 더 빨리 잊는 법이다.” 재산 빼앗긴 건 죽어도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변덕에 의존하는 이익공유제의 수명은 정권 임기와 일치할 공산이 크다. 이익을 나누려면 원가부터 알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이익공유제가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지 않았을까. 내가 흐지부지 끝난다에 한 표를 거는 이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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