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이노베이션] 주소 없어도 길 찾는 벤츠, 車부품 된 폐기물.. "장벽 허무니 혁신"
대기업과 스타트업 공동으로 혁신 추구
대기업은 아이디어, 스타트업은 지원받아
"생존·공통과제 해소 위해 경쟁사라도 협력" 상>
'생존'과 '성장'. 모든 산업이 급격하게 디지털로 전환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전 세계 기업들이 안고 있는 화두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확산되면서 많은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기업들이 내민 카드가 개방형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과거에는 기업 내부 역량을 끌어 모아 혁신을 꾀했다면 개방형 혁신은 외부 신생기업(스타트업)과 손잡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에서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을 찾고, 스타트업은 대기업 지원을 받아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며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해 손 잡는 이유다. 이에 한국일보는 새로운 산업 트렌드가 된 오픈 이노베이션을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자동차로 주소지가 없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예를 들어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마련된 임시행사장 같은 곳이라면 도로안내장치(내비게이션)가 있어도 주소를 입력할 수 없으니 소용이 없다. 그런데 지난해 출시된 메르세데스 벤츠의 '더 뉴 E-클래스' 차량에는 이를 찾아갈 수 있는 새로운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다. 영국 스타트업 왓쓰리워즈가 개발한 이 장치는 전 세계를 가로 세로 각 3m 크기로 잘게 쪼개서 여기에 주소가 아닌 단어를 지정했다. 따라서 주소가 없는 장소도 해당 단어를 말하면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 장치를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인 '스타트업 아우토반'을 통해 도입했다. 스타트업 아우토반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속한 독일 다임러 그룹이 전 세계 스타트업과 손잡고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2016년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다임러 그룹은 이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5,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발굴했고 이 중 176개 스타트업과 협업하고 있다. 왓쓰리워즈 외에도 이스라엘 스타트업 유비큐와 손잡고 생활폐기물을 재활용해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있으며, 미국의 모 스타트업과 공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획해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기술을 준비 중이다.
다임러 그룹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서울시 창업허브, 스파크랩 등과 함께 스타트업 아우토반 행사를 개최했다. 다임러 그룹은 행사에 참여한 100여개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화물 위치 추적, 실내의 차량 위치 확인 기술 등을 보유한 5개사를 선정했다. 다임러 그룹 관계자는 "이번에 선발한 국내 스타트업의 기술을 신차 개발 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이한 것은 스타트업 아우토반에 참여한 업체들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쟁사인 포르쉐, 롤스로이스, 현대자동차 등이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 질병 예방 등 범지구적으로 대처할 문제나 업계의 공통 과제는 경쟁사여도 과감히 손을 잡는 것이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추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플라스틱 폐기물 종식 연합(AEPW)이다. AEPW는 전 세계 화학 및 에너지기업 80개사가 1조5,000억원의 펀드를 만들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친환경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기구다. 여기에 엑슨모바일, 셰브론, BP, 스미토, 바스프, 다우, 토탈, SKC 등 다양한 경쟁사들이 한배를 탔다. 이들은 미국 실리콘밸리, 프랑스 파리, 싱가포르에 허브 센터를 두고 약 2,000개 스타트업과 협력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유럽과 싱가포르 등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스타트업 크리스피어' 프로그램 역시 제약업계 맞수인 로쉬와 사노피가 공동 운영한다. 지난해 또다른 경쟁사인 스위스 제약회사 론자가 합류했고 빌 멜린다재단, 마이크로소프트, 액센츄어 등 IT기업과 컨설팅업체 등도 가세했다. 이들은 독일 뮌헨, 미국 실리콘밸리, 싱가포르 등에 허브센터를 두고 에잇센스, 웰테크, 바이오메스 등 전 세계 60개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이 산업간 결합(cross industry)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종업계 경쟁사는 물론이고 전혀 다른 산업의 스타트업까지 참여해 혁신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운영하는 미국 플러그앤플레이의 송명수 한국지사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경쟁사하고도 공통 과제 해결을 위해 손을 잡아야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한다"며 "이처럼 개방적 자세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해야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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