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의 K-조선, 중국 규모의 경제 '넘었다'

권가림 기자 2021. 1. 1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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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K조선, 독자 기술로 압도적 세계 1위 달린다②]10년 전 '친환경 기술' 예습한 모범생 빅3

[편집자주]글로벌시장에서 ‘K-조선’의 위상이 커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례없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최고의 실력으로 중무장한 한국 조선사가 잇따라 대규모 수주 랠리를 이어가며 부활의 뱃고동을 울리고 있다. 한때 한국과 경쟁하던 중국과 일본은 더 이상 적수가 아니다. 잇단 건조 지연·좌초 사고 등으로 기술력과 품질 논란을 자초하며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스스로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3년 연속 세계 수주 1위에 이어 신축년 또다시 왕좌 수성에 나선 한국 조선의 발걸음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현대중공업 도크 전경. /사진=한국조선해양
반년 전인 2020년 상반기만 해도 국내 조선업계 분위기는 우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선박 발주량은 역대 최저치인 575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추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24% 적었다. 독(dock·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서 조선소와 항만 등에 세워진 시설)이 텅텅 비면서 조선업계는 최악의 시간을 보낼 것이란 우려마저 나왔다.

하지만 하반기 판세는 뒤집혔다. 국내 조선사는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중국과 일본을 압도했다. 고부가가치 선박시장에서 아직은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조선·해운 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 발주된 LNG선은 63척이다. 이 중 현대중공업그룹(21척)·삼성중공업(19척)·대우조선해양(6척)이 46척을 수주해 국내 조선 3사가 73%를 차지했다. 중국은 5척을 따냈고 일본은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은 14만㎥ 이상 대형 LNG 운반선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2016년 100%(전세계 발주량 6척 모두 수주) ▲2017년 55.6%(9척 중 5척) ▲2018년 100%(65척) ▲2019년 94.1%(51척 중 48척) ▲2020년 73%(49척 중 36척) 등을 기록했다.

이처럼 경쟁국인 중국·일본과 비교할 때 국내 조선업의 비교우위는 분명하다. LNG 운반선은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비석유계 LNG를 운반하는 선박이다. LNG는 한 번에 많은 양을 운반하기 위해 거의 100% 액화해 운반하는데 이를 위해 일반 선박과 달리 탱크 내부를 영하 163도 아래로 유지해야 한다. 일반 금속은 쉽게 깨지기 때문에 LNG 운반선의 화물창은 특별한 강철로 만들어야 한다. 냉동장치와 보온설비도 필수다. 기체로 날아가는 양도 줄여야 해 기술력의 중요성이 크다. 화물의 특성상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 속에서 LNG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기술도 요구된다. 조선업계는 이 같은 선박 건조 기술의 총집합체가 LNG 운반선이라고 본다.



中 납기지연·낮은 품질에 선주들 ‘부글’


2020년 한·중·일 선종별 수주 성적. /그래픽=김은옥 기자
경쟁국의 거센 도전을 따돌리고 한국 조선사가 LNG선 시장을 주도해 온 것도 이 기술력 때문이다. 이 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이 주름잡았었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의 기술 개발로 판세가 뒤집어졌다. 일본은 선체에 공 모양의 LNG 화물창을 실어놓은 형태인 ‘모스’ 타입의 LNG선을 제조해왔다. 반면 국내 조선소는 선체와 화물창을 일체화한 ‘멤브레인’ 타입을 개발했다. 

멤브레인은 모스 타입보다 적재 용량이 40% 커 글로벌 선주들의 관심을 얻었고 결국 일본을 앞지르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 전세계 LNG 운반선은 대부분 멤브레인형으로 한국 조선소만 이 같은 형태의 대형 LNG 운반선을 건조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자연 발생하는 증발가스를 100% 다시 액화해 화물창으로 돌려보내는 ‘완전재액화시스템’(FRS) 등도 꾸준히 개발하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저렴한 가격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이 국내 조선사를 따라잡기 위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중국은 2012~2017년 세계 수주 1위 국가였지만 보수적인 조선·해운시장에서 신뢰를 잃으며 한국의 ‘LNG선 싹쓸이’에 일조했다.

중국 국영기업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운반선 ‘글래드스톤’호가 2018년 6월 엔진 고장으로 해상에서 멈춰 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조선업계 LNG선 수주잔량 기준 1위 중국 국영조선그룹 CSSC 계열 조선사인 후동중화조선은 중국 조선업계를 통틀어서도 LNG선 건조 경험이 가장 많은 회사다. 그럼에도 통상 20년 이상 운영되는 LNG선인데 선령이 고작 2년 된 글래드스톤호가 운항 불능 상태에 빠진 점은 기술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사고 원인을 찾고 기술 보완을 했지만 발주가 없어 검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항해 도중 LNG 운반선에 문제가 발생하면 기름이 유출될 수 있다. 기름 유출은 발주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는 사고여서 선사들이 더욱 발주를 중국에 넣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사 수주의 80~90%는 해외 선주인 반면 중국은 40~50%인 점도 국내 조선사의 기술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초대형 고부가가치 선박도 경쟁력을 갖는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20만DWT(재화중량톤수) 이상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발주 41척 중 한국은 35척(85%)을, 중국은 5척(12%)을 각각 수주했다.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양에서는 중국에 밀린다. 지난해 전세계 1만2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이상 컨테이너선 발주 38척 중 한국은 18척(47%), 중국은 20척(53%)을 각각 확보했다. 다만 LNG 추진 기술 활용 컨테이너선 건조 능력은 격차가 크다. 중국선박공업이 프랑스 선사로부터 수주한 LNG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9척은 기술 부족으로 1년 이상 납기가 지연되고 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IT공학과 교수는 “중국은 기자재 설비 국산화율·생산 효율성·설계·화물창기술·박판 용접기술 등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3~5년 격차를 보인다”며 “한국은 10년 전부터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하고 건조 경험을 축적한 것이 이제 빛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암모니아·수소 ‘초격차’


도크에서 건조중인 선박들. /사진=대우조선해양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100% 친환경’ 연료 개발은 앞으로의 과제다. 조선업계는 국제해사기구(IMO)가 2030년까지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40%, 2050년까지 50% 감축을 목표로 설정함에 따라 선박의 친환경 전환율을 높여야 한다. 일본은 추격 의지를 잃어 업계는 사실상 이 국면을 한국과 중국의 대결로 보고 있다. 

LNG 연료가 과도기적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LNG는 기존 선박용 연료 대비 황산화물과 분진 배출을 100%, 질소산화물 배출을 15~80%, 이산화탄소 배출을 20% 줄일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2008~2009년부터 일찌감치 벙커C유와 LNG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 추진 엔진’ 연구·개발을 해 온 덕에 LNG 추진선에서도 기선제압에 나서고 있다.

LNG 해상 주유소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면서 주유소 대신 전기차 충전소가 늘어나는 것처럼 LNG 선박 수가 늘어나며 국내 조선업계는 LNG 벙커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LNG 벙커링은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선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초로 LNG를 LNG 벙커링을 이용해 다른 선박에 옮겨 싣는 작업에 성공했다. LNG 선적작업 중 발생하는 증발가스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메탄가스 노출 제로 기술을 적용해 LNG 선적작업을 가능하게 했다.

미래 LNG 대체 연료인 암모니아와 수소 연료는 초기 개발 단계다. 암모니아는 질소와 수소의 합성 화합물로 대표 청정 연료다. 연소 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다. 안전성도 높고 보관·운송·취급까지 쉽다.

국내 조선 3사는 한국선급과 영국 ‘로이드선급’으로부터 ▲액화수소운반선 ▲암모니아 추진 초대형컨테이너선 ▲연료전지 연계 하이브리드 전기추진 선박 등에 대한 기본 인증을 마친 상태다. 이들은 수소·암모니아 연료전지 등 핵심 기자재 기술과 연료저장탱크 및 연료공급·추진 시스템 개발을 통해 오는 2024~2025년 선박을 상용화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기술개발과 더불어 중소형 조선사 지원 및 인력 관리가 병행돼야 ‘세계 1위’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훈 교수는 “스마트 야드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의 변화가 없으면 원가 절감을 할 수 없는데 특히 중소형 조선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소형 조선소 위축으로 기자재 생태계가 무너질 경우 대형 조선소가 국내 기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도미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대형 조선소+중소형 조선소+기자재 산업이 함께 생존하기 위해선 중소형 조선사의 기술개발 지원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김현수 대한조선학회장은 “기술적 트렌드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한국이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다만 일본의 경우 더 이상 선박 설계인력이 없어 일본 선주가 한국 조선소를 찾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경기 상황에 따라 고숙련 인력을 채용하고 자르는 인력 운영이 지속되면 선주의 신뢰가 떨어질 뿐 아니라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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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가림 기자 hidd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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