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복 못 벗은 1년 '끝모를 사투' "공공병원이 언제까지 버틸는지.."

최하얀 2021. 1. 1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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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코로나19와 싸운 1년] ①비상등 켜진 의료대응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전하는 코로나 1년

종합상황실 모니터로 24시간 체크
1년간 확진자 2400여명 치료받아
요양병원 집단감염에 부담 가중
식사보조, 대소변처리에 욕창치료..
"경증 환자 있는 생활치료센터에는
파견인력 월800만원..정부에 배신감"
14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정문에서 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발열검사뒤 받은 36.5도 아래라는 표식을 병원을 나서면서 출구 한쪽면에 붙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깜빡깜빡.’ 지난 14일 찾은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본관 7층 코로나19 종합상황실에는 대형 모니터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12개의 병실 화면으로 분할된 모니터에는 환자 움직임이 감지될 때마다 곳곳에서 빨간색 줄이 깜빡였다. 옆으로 누워 휴대전화를 보던 한 젊은 남성이 반대편으로 휙 돌아눕자 어김없이 빨간 줄이 들어왔다. 방호복 차림의 간호사들이 병실 안 쓰레기통을 비우는 화면에도 빨간 줄이 깜빡인다. 이날 서울의료원에 입원 중인 코로나19 환자는 211명에 이르렀다. 의료진은 24시간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혹여라도 환자가 쓰러지거나 호흡곤란을 일으키면, 부리나케 방호복을 챙겨 입고 격리병동(8~13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1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코로나19 종합상황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분주하게 점멸하는 빨간 줄 화면 사이, 좀처럼 움직임이 없는 병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중 한 곳을 보니, 산소 공급 콧줄을 단 고령의 환자가 힘없이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슴까지 끌어올려진 푸른색 이불로는 작고 마른 체구가 숨겨지지 않는다. “요양병원에서 오신 분이에요. 이분 말고도, 저기 두 분도 그렇고요. 최근에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많았잖아요.” 코로나19 병동 파트장인 최순영 간호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병실들에는 죄다 빨간 줄이 생기질 않았다. 마치 정지된 화면 같았다. 이날 모니터 화면 속에선 증상이 악화돼 숨진 환자의 시신이 나무관으로 옮겨지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의료원에 처음 입원한 코로나19 확진자는 지난해 1월30일 5번째와 7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였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약 1년간 2416명의 확진자가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600병상 이상을 갖춘 공공병원이면서 중환자 치료 역량을 갖춘 의료기관이다 보니, 전체 입원 환자 수가 많은 것뿐 아니라 의료진의 손길이 특히 많이 필요한 환자들이 다수였다. 지난해 2월 말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정신과 치료까지 겸해야 하는 환자들을 전원시킬 곳이 마땅치 않을 때에도, 환자 8명이 이곳에 입원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코로나19 병동에서 한 환자가 오전 10시 경 숨을 거뒀다. 간호사들은 시신을 사체낭에 담아서 공바로 나무 관에 시신을 넣었다. 그 모습이 종합상화실 폐쇄 회로 텔레비전 모니터에 전달 되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갑작스레 닥친 1차 유행

지금은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초기에는 혼란 그 자체였다. 지난해 2월20일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자마자, 병원은 이틀 만에 코로나19 환자들을 받기 위한 설계도를 만들었다. 최대한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하는 게 핵심이었다. 유행 초기에는 공기 전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각 병실의 실내 공기를 100% 밖으로 빼내는 대대적인 공사가 이뤄졌다. 병실마다 환자들을 관찰하기 위한 시시티브이가 설치된 것도 이때부터다. 김명윤 시설팀 차장은 “당시 음압기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며 “정부에선 어떻게 하라는 지침은 없고 모든 걸 병원이 알아서 해야 했다”고 돌이켰다.

입원 환자가 쏟아지면서 6년차 간호사 안소현씨는 지난 1년을 꼬박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했다. 그는 “그냥 움직이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기저귀를 갈게 될 줄은 몰랐다”며 “청도대남병원 환자분들은 쉽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에 견주면 젊고 경증인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단순업무에 가까웠다고 한다. 초기에만 해도 안 간호사는 “코로나19가 3개월이면 끝나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훌쩍 지났고 이제 또 다른 1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1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코로나19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실로 가기위해 준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해 봄, 병원 밖 세상은 1차 유행이 한풀 꺾이는 듯했지만 병원 안은 달랐다. 신종 감염병의 특성에 대한 파악이 부족했던 초기에는 격리해제(퇴원) 요건이 훨씬 엄격했다. 이 때문에 병원에선 환자들이 줄기는커녕 외려 늘고 있었다. 최재필 감염내과 과장은 “5월 초 서울 이태원클럽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입원 환자가 한때 250명까지 늘기도 했고 그에 따라 병상이 부족했다”며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하지 않아도 의사의 임상적 판단으로 퇴원시킬 수 있도록 격리해제 요건이 완화된 6월25일이 의료 현장에선 커다란 변곡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마스크 대란도 겪어야 했다. 의료기관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김지인 구매물류팀장은 병원 지하 1층 창고에 쌓힌 마스크 박스들을 만지며 “그땐 이렇게 없었죠. 병동 공사 다 하고 의료진들도 준비가 됐는데 마스크가 없어 환자를 못 보면 어쩌나 숨이 턱턱 막혔다”며 “병원들은 협력하기보다 확보 물량과 조달처를 서로에게 숨기며 구매경쟁이 가열됐었다”고 전했다.

■ 2~3차 유행 거칠수록 가중된 부담

2차 유행이 닥친 8월에 의료진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뿐 아니라 더위와도 싸워야 했다. 의료진이 입어야 하는 방호복 속에서는 연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안 간호사는 “방호복을 한번 입으면 3시간 정도는 벗을 수 없으니 물을 마시고 싶어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참았다”며 “차가운 게 있으면 뭐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방역수칙을 어겨 집단감염이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들은 방역당국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혈압을 재서 알려달라고 하면 전화를 끊어버리고 병원으로 받을 수 없는 택배를 받겠다고 우기는 식이었다. 일부 환자는 호텔 ‘룸서비스’ 주문하듯 원하는 음식을 가져오라고 닦달하기도 했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최대 1천명 넘게 발생한 3차 유행은 환자 규모나 확산 속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12월에 들어서자 7층 종합상황실 모니터에 빈 병상은 하나도 없었다. 수도권 감염병 전담병원이 모두 병상 부족에 시달렸다. 급기야 병원 부지 공터에는 컨테이너 임시 병상까지 들어섰다. 게다가 요양병원·요양원 집단감염이 속출하면서 의료진의 부담은 한층 가중됐다.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로 피해가 컸던 서울 구로 미소들요양병원 환자 일부도 이곳에 입원 중이다.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환자들이 늘어나자 간호사들이 식사 보조부터 대소변 처리, 주기적인 체위 변경, 욕창 치료까지 추가로 해야 해, 업무 강도가 극도로 높아졌다. 안 간호사는 “끝이 보이지 않아 더욱 숨이 턱턱 막혔다”고 말했다.

의료진과 직원들은 서로를 격려하고자 병원 안 곳곳에 응원 메시지를 붙였다. 격리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옆 복도에 붙은 대형 거울에는 ‘그대는 지금 영웅을 보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올해도 달려야 하는 의료진들

올해 들어 3차 유행은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아직 의료 현장은 힘겹기만 하다. 14일 기준 입원 환자 211명의 평균 연령이 73살에 이를 정도로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최재필 과장은 “코로나19 치료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서 필요한 것은 간병밖에 없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퇴원을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며 “4주 넘게 입원 중인 환자가 24명이고 2주를 넘긴 분들도 7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돌봄 시설이 없어 퇴원하지 못하는 요양병원 환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코로나19에 걸렸던 환자를 받는 것에 대한 요양병원들의 공포는 이해하지만, 코로나19 전담병원에 이렇게 장기 입원 환자가 늘면 4차, 5차 유행을 대비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1년간 쉼없이 달렸고, 앞으로도 달려야 하는 의료진들은 ‘공공병원은 힘들어도 그냥 버텨라’ 하는 식의 정부 태도에 힘이 빠질 때가 많다고 전했다. 안 간호사는 기존 코로나19 전담병원 간호사 급여보다 최근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급히 모집해 파견한 간호사 수당이 2~3배에 이르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탈 의료진이 늘고 현장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얼마 전 생활치료센터에 파견된 간호사들은 저희처럼 힘든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으면서도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한달 800만원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정부에 배신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진들은 민간과 공공병원을 구분하지 말고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적극 문을 열어야 더 큰 유행에 대응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재필 과장은 “재난을 넘어서려면 사회적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최 과장 책상 위 전화는 10~15분 단위로 계속 울렸다. 갈 곳이 정해지지 못한 환자를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요청에 최 과장이 수화기 너머로 답했다. “아 네. 저희가 받을게요. 저희 전원 협력실로 바로 소견서 보내주세요.”

1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코로나19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실로 가기위해 코로나19 의료진 전용 승강기로 이동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코로나19병동 안소현 간호사.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코로나19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보호복을 착용하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실로 가기위해 보호복을 착용하며 준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최하얀 서혜미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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