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내부에서 무너지는 국군

안용현 논설위원 2021. 1. 1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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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이병 시절 미군 장교에게 경례를 안 붙였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그 장교는 “한국군은 사병, 부사관끼리는 경례를 잘하면서 왜 장교는 못 본 척하느냐”고 꾸짖었다. 미군이 사복 차림이면 장교와 부사관이 친구처럼 어울리기도 하지만 군복을 입으면 장교만 경례를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어린 장교라도 부사관은 ‘서(sir)’나 ‘맴(maam)’으로 말을 마쳐야 한다. 대신 장교는 부사관을 부를 때 ‘중사’ 같은 계급을 붙여 예우한다. 느슨해 보여도 공사(公私) 구별과 상호 존중은 분명하다.

▶미국은 1775년 독립 전쟁을 위해 육군을 창설할 때부터 부사관을 편성했다. 미군의 힘은 무기보다 부사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신참 장교를 대신해 사병을 통제하고 훈련시킨다. 1·2차 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을 겪으면서 장교와 부사관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2019년엔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을 보좌하는 합참 주임원사 계급장에 별 4개를 넣기도 했다. 장교와 부사관의 간극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국군은 거꾸로다. 일부 초급 장교들이 삼촌뻘 원사에게 반말하고, 일부 터줏대감 부사관들은 신입 장교에게 경례도 안 하는 악습이 여전하다고 한다. 이 정권 들어 부사관 4명이 젊은 남성 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나이 많은 남성 부사관들이 어린 여군 장교를 성희롱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장교와 부사관이 찰떡인 경우도 있었다. 대위와 하사가 영내 대기 지침을 어기고 유흥 클럽에 갔다가 나란히 코로나에 걸렸다. 군 기강의 총체적 붕괴다.

▶최근 일부 부사관들이 현직 참모총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 12월 육군 총장이 주임 원사들에게 “나이로 생활하는 군대는 없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를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장교는 반말해도 된다'는 식의 총장 발언도, 공식 항의 절차를 무시한 일부 부사관의 행동도 모두 부적절하다.

▶2017년 판문점에서 북한군 부사관이 귀순할 때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그를 구해낸 건 중사 2명과 중령이었다. 실전 상황에서 목숨을 거는 건 결국 장교와 부사관이다. 경례나 반말을 따질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은은 실전에 사용 가능한 전술핵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전술핵을 탑재할 탄도미사일은 이미 완성했다. 사거리 500km짜리 핵미사일이 누구를 겨냥하겠나. 정권의 ‘평화 타령’에 군마저 세뇌된 건가. 적의 핵 위협 앞에서 자중지란 벌이는 군대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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