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호메이니가 만든 혁명수비대, 이란 정치·경제 핵심 세력으로 성장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1. 1.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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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서 우리 유조선 나포는 정규군 아닌 ‘혁명수비대’ 소행
神政·공화정 병존 이란, 하메네이 치하서 권력 더 강화돼
헤즈볼라 지원, 호르무즈 해협 관할… 변화·리더십 ‘기로’에

이란에는 두 군대가 있다. 정규군과 혁명군이다. 혁명이 일어난 지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혁명군이 있다니 웬일일까? 1979년 시아파 성직자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을 주도하여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당시 이란 정규군은 ‘샤(국왕)’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호메이니는 자신들에게 총을 들이대지 않은 군이 고마웠다. 그러나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떨쳐낼 수는 없었다. 호메이니는 고민 끝에 기존 군을 해체하지는 않되 열혈 혁명 세력에게 무기를 주어 또 다른 군을 설치하기로 결심했다. 혁명군, 이른바 ‘혁명수비대(IRGC·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다. 얼마 전 페르시아 걸프 해역을 항해하던 우리 선박을 나포했기에 익숙한 이름이다.

군은 영토와 국민을 지켜 주권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혁명수비대의 설립 목적은 다르다. 이슬람 혁명 이념을 지키고 확산시키는 것이 존재 이유다. 아예 이란 헌법 150조에 혁명수비대 설치와 지속 조항을 두고 ‘혁명 수호와 완성’이라는 목적을 못 박았다. 헌법 기관인 셈이다. 그렇다면 특정한 군대를 세우고 헌법에 명시하면서까지 지키려 한 혁명의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혁명은 왕정과 같은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다. 호메이니도 공화국을 세웠다. 보통 혁명 후에는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공화국이 들어선다. 이란은 달랐다. ‘민주’가 아닌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래서 이란의 공식 국호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다. 공화정과 신정(神政)의 병존 체제라 할 수 있다. 현대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4년마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다. 연임은 가능하지만 3선은 불가하다. 누가 당선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를 한다. 집권 정파도 바뀌곤 한다. 때로는 보수파가, 때로는 중도나 개혁파가 당선된다. 국회의원 선거도 4년마다 꼬박꼬박 한다. 선거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대통령이 바뀌는 경우는 중동에서 희소하다. 여기까지 보면 이란은 공화정의 전형이다.

반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종신직 최고 지도자가 있다. 이슬람 성직자가 맡는다. 사법부 수장을 임명하고, 주요 선거 후보를 심사하며, 정부 주요 정책에 개입한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통해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하기 쉬운 인본주의 정치를 견제한다는 명분이다. 이 독특한 구조를 ‘벨라야티 파키(Velayat-i-faqih)’ 즉 ‘이슬람 법학자들의 지도 체제’라 부른다. 직접 선거로 공화국 지도자들을 뽑지만, 동시에 이슬람 우위의 통치 영역을 굳건히 해놓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란은 신정 체제다.

이란의 국시는 이 체제로 상징되는 이슬람 혁명을 수호하고 전파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위에 혁명수비대가 있다. 국내에서는 바시즈(Basij) 민병대 등을 동원, 반혁명 세력을 감시하고 견제한다. 해외에서는 예하 쿠드스(Quds) 부대가 혁명 사상 전파에 나선다. 이라크⋅시리아⋅레바논 등에서 소위 친이란 시아파 연대를 꾸리며 현지 무장 세력을 돕고 있다. 헤즈볼라가 대표적이다. 병력 수는 정규군에 비해 적지만, 영향력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미사일 부대 운용은 물론 이란의 최고 요충지 호르무즈 해협을 직접 관할하고 있다. 무게감을 짐작하게 한다.

주변 국가들은 혁명수비대의 역내 활동에 민감하다. 특히 걸프 왕정 국가들은 혁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연 긴장한다. 이스라엘은 더 예민하다. 북쪽으로 접경하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에 혁명수비대가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도 연계하고 있다. 안팎으로 이란에 둘러싸인 느낌일 것이다. 혁명수비대 해외 부대 이름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이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을 더욱 심란하게 한다.

혁명수비대는 군문을 넘어 이란 정치 및 경제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국회 소위원회 위원장의 3분의 2가 혁명수비대 출신이거나 유관 인사다. 석유⋅건설⋅교통⋅항만 등 국가 기간산업 주요 지분을 직간접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흔히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 수준이 아니라 ‘패럴렐(Parallel·준국가) 스테이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호메이니가 최고 지도자로 있을 때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2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권좌에 오르면서 힘이 더 세졌다. 권력 경쟁 국면에서 경쟁자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에 비해 열세였을 때 혁명수비대가 하메네이를 지원하고 나서면서 판세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혁명수비대 내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먼저 든든한 배경인 하메네이의 노쇠와 병환이 부담이다. 벌써부터 후계자 구도가 논의되고 있다. 둘째는 비판 여론의 확산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코로나 사태가 겹쳐 이란 국내 사정도 죽을 지경인데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가자 지구 관리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불만이 잦아들지 않는다. 셋째는 리더십의 약화다. 작년 1월 혁명수비대의 핵심 리더였던 솔레이마니의 죽음 이후 점차 기강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요새 부쩍 미사일 공개, 해상 훈련 시위 등에 나서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련의 행동도 이러한 위기감의 발로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선박 나포도 이런 상황과 맞물린 것은 아닐까?

이란 국민 다수는 여전히 혁명 체제에 대한 애착이 있다. 서구식 민주주의나 중동에서 익숙한 왕정 또는 군부 권위주의 정권보다 낫다고 믿는다. 만일 이란 이슬람 혁명 사상이 바람직하다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리고 이슬람 세계로 물 흐르듯 전파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무력을 통해 지켜내고 확산시키겠다고 나선다면, 그래서 세상과 자꾸 부딪친다면 사람들은 계속 혁명의 본질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 의문의 핵심이 혁명수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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