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아무리 ‘나쁜 놈’도 적법하게 처벌하는 게 法治다

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21. 1.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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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출금에 가짜 불법 서류
정부 공식 해명은 ‘불가피했다’
불법 반복하다가 무감각해졌나
現정부, 법치·사법체계를 공격해

지난해 ‘채널A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겐 낯선 ‘독직폭행(瀆職暴行)’이란 범죄 용어가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에 적용된 혐의이다. 글자 그대로 풀자면 ‘직(職)을 더럽힌(瀆) 폭행’이라는 뜻이다. 형법 제125조에 규정돼 있는 이 범죄는 재판, 검찰, 경찰 등 공무원이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폭행이나 가혹 행위를 한 경우를 말한다.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차장검사 측의 주장을 토대로 재구성한 압수수색 당시 상황. 위에 올라탄 것이 정진웅 차장검사.

독직폭행은 일반 폭행죄보다 형(刑)이 무겁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 선고만 가능하다. 혐의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해 수많은 야권·학생운동권 인사를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독직폭행 혐의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우리 형법 체계에 독직폭행에 관한 별도 조항이 있는 것을 알고 새삼 감동했다. 이 조항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불법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내용이다. 민주(民主)와 민권(民權)을 상징하는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작된 서류로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한 것은 국가 권력이 민권을 짓밟은 일이었다. 형벌권 문제를 관장하는 법무부와 검찰이 그 짓을 했다. 김 전 차관은 검찰 간부 시절 건설업자에게서 난잡한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의 인물이다. 아무리 ‘나쁜 놈'일지라도 그를 처벌하기 위한 권력 행사의 과정은 적법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法治)이고 민주주의이다. 처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의 탈·편법을 용인한다면 고문이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횡행하는 일이다.

이근안이 그랬다. ‘용공(容共) 분자 처벌’이라는 그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관절 꺾기, 전기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근안은 7년 형기를 마치고 수년이 흐른 뒤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문 기술자가 아니라 ‘심문 기술자’라고 했다. 자신의 행위는 ‘애국’이라고 했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불법에 눈감으면 이런 야만(野蠻)으로 돌아간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가 당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됐던 검사 개인의 범죄일까. 물론 가짜 사건번호를 적은 허위 문서로 출금 요청서를 만들고, 사후 승인요청서에 있지도 않은 내사번호를 적어 집행한 것은 그다. 그러나 법무부가 지난 12일, 16일 연이어 내놓은 공식 입장문을 보면, 이 같은 범죄가 정권과 정부 차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법무부는 입장문에서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었다” “부차적 논란”이라고 했다. 국가 기관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사례가 하도 반복되다 보니, 이젠 정부 공식 입장문에서까지 불법을 따지는 문제에 “불가피했다” “부차적”이라는 해명을 버젓이 내놓는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 법무부 직원들이 긴급 출금 요청서가 접수되기도 전에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제지하기 위해 출동했던 것으로 확인된 영상이 공개됐다. /인천공항CCTV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을까.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양 도취해 있다 보니 불법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대통령의 친구를 울산시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의 7개 조직이 개입한 정권이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원하는 대통령 뜻에 맞추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정부다. 이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해당 사건 검찰 수사팀을 조각내 찢어 놓았고, 감사원장에겐 “집 지키라고 했더니 주인 행세를 한다”고 공격한다. 기가 막힌 건 그러면서 적반하장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법과 제도를 맘대로 재단한다”고 한다는 점이다. 법치와 사법 체계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집단이 법과 제도, 민주주의를 운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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