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10주기 "영원한 현역, 당신을 기억합니다"

이기문 기자 2021. 1.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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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타계 10주기.. 개정판 잇따라
후배 문인들, 기일마다 살던 집 찾아

오는 22일은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타계한 지 10년이 되는 날. 하지만 10주기 추모는 새 옷을 입은 책으로 이미 시작됐다. 지난달 박완서의 에세이 35편을 엮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세계사)가 출간됐고, 이달 들어 대표적 자전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개정판(웅진지식하우스)이 나왔다. 마지막 장편인 ‘그 남자네 집’(현대문학), ‘박완서 산문집’(문학동네)도 발간된다. 맏딸 호원숙 작가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집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세미콜론)을 펴냈다.

박완서 작가가 여든살에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기일이 되면 어김없이 후배 문인들은 경기 구리시의 아치울 마을 집을 찾는다. 고인의 생전 생활상이 그대로 보존된 침실과 서재가 있는 이 노란 집엔 호원숙 작가가 산다. 소설가 이경자·심윤경·정이현, 시인 정은숙·이병률, 출판인 박진숙·이근혜·염현숙·김소영·최윤혁, 조광호 신부와 이해인 수녀가 개근 멤버들. 장례식 때 천주교공원묘지 땅속에 뉘인 박완서의 관에 꽃잎을 뿌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고(故) 박완서(위 사진) 소설가가 세상을 떠난 후로도 기일이 되면 후배 문인들이 집을 찾는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기일에 박완서의 방에 모인 작가들. 왼쪽부터 맏딸 호원숙 작가, 이근혜 문학과지성사주간, 김소영·염현숙 문학동네 공동대표, 심윤경 소설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정이현 소설가, 이병률 시인. 올해는 10주기인데도 코로나로 손님을 맞지 못한다고 호원숙 작가는 아쉬워했다. /주완중 기자·호원숙씨 제공

추모 미사와 제사를 지낸다. 호원숙 작가가 친지들과 함께 준비하는 제사는 차라리 잔치에 가깝다. 각종 해산물과 고기로 준비한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 손님을 맞는다. 호씨는 “이맘때가 되면 늘 어떤 음식들로 50여명의 손님을 대접해야 할까 생각한다”고 웃었다.

후배 문인들은 박완서의 방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교자상 위로 그가 즐겼던 포도주가 늘 오른다. 정이현 소설가는 “침대에 앉기도, 물건과 사진을 만지기도 하며 고인을 추억한다”고 말했다.

아치울 노란 집 앞에 앉은 박완서 소설가/세계사 제공

후배들은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각자의 박완서를 기억해냈다. 이경자 소설가는 “마음의 등대랄까, 의지처가 없어졌다”고 했다. 박완서는 오빠와 숙부를 분단과 전쟁으로 떠나보냈고, 남편과 아들은 폐암과 사고로 하늘로 떠나보냈다. 누구 못지않게 상처 많았던 인생, 작가는 예민하고 섬세한 눈으로 주변의 상처를 살폈다. 심윤경 작가는 어느 날 낙심해 박완서를 찾아갔다고 했다. 웃고 떠들며 힘든 마음을 숨겼는데도, 박완서는 기색을 알아보고 “힘들 때도 있지요?”라며 말을 건넸다. 심씨는 “그 짧은 말에 많은 위로와 이해를 받았다”며 “한참 어린 후배에게 늘 존대하며 동료 작가로 깍듯하게 대해 주셨다”고 말했다. 박완서는 사람을 사랑했지만 자주 만나진 않았다. 이병률 시인은 “문단의 존경을 받는 작가로서의 포즈를 없애려 일부러 만남을 삼갔다”고 말했다.

책장 앞의 박완서./세계사 제공

박완서의 책장은 늘 신인 작가들 작품으로 빼곡했다. 1996년 동인문학상 심사를 맡아 2006년까지 활동하며 10년 동안 매달 한 번도 빠짐없이 후배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문학동네가 2010년 처음 제정한 젊은작가상의 취지에 공감해 심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SF 소설을 쓴 배명훈 작가를 지지했고, 배씨는 당시 장르소설 작가로서는 파격적으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는 “2회 때도 병상에서 젊은 작가들의 후보작을 읽으셨다”고 말했다. “나를 ‘영원한 현역 작가’로 불러줄 때 기분이 가장 좋다”던 박완서는 1월 말 예정된 심사를 마치지 못하고 떠났다. 그에게 소설이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저리고 아프면서 끓어오를 때 써지는 것”이었다.

바람대로 박완서는 영원한 현역이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작년보다 올해 2배 넘는 독자들이 박완서를 찾고 있다. 지난 10년간 박완서 작품을 구입한 독자 중 여성이 72%였고, 20·30세대 독자는 전체의 36%였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박완서는 여성 어른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작가”라며 “그는 문학인으로서 추해지지 않았고, 그의 작품은 낡지 않고 세속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처럼 지금도 독자에게 질문을 건넨다”고 말했다.

서재에서 집필하는 박완서. 그 세대 작가로는 드물게 일찍이 워드프로세서로 작업을 했다./세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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