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흠뻑 비 맞은 공연
아이들은 비를 맞는다. 아이들은 비를 맞을 때 웃음을 터뜨린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빗방울이 얼굴을 두드리는 동안 눈도 못 뜨고 입을 벌려 비의 맛을 본다. 장화를 신었든 아니든 용맹하게 고인 물속으로 뛰어든다. 호통을 치거나 말리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추우나 더우나 옷이 젖거나 말거나 그러고 한참을 놀고야 만다. 도대체 왜? 아이들은 또 그네를 탄다. 아이들은 그네에 몸을 싣고 정신 사납게 흔들리고야 만다.

식물을 키워보면 바람과 비를 맞고 나서 풀들이 파릇파릇 살아나는 걸 보게 된다. 뿌리째 뽑히지만 않는다면 태풍이 지난 후가 최고다. 도대체 바람과 비 속에 무엇이 있길래 저럴까. 거꾸로, 바람과 비 속에 뭐가 있다는 걸 어쩌다 이렇게 모르게 되었을까. 모든 어른이 아이를 지나 어른이 된 거라면 조금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릴 때는 마냥 비를 맞고 다녔던 것 같다. 환경오염으로 ‘산성비’라는 말이 등장하고부터 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는 줄 알게 되었고 그 후 비를 맞는 일은 점점 없어졌다.
작년 여름, 어린이 공연이자 거리 공연을 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초조하게 준비한 공연은 늦가을 장마에 딱 걸려들었다. 우리는 공연 사흘 내내 우중충한 하늘만 보고 살았다. 비 예보와 구름과 바람 방향을 비교하며 세트를 꺼내고 공연을 준비했고, 비를 가늠하느라 종일 비를 맞았다. 비가 너무 와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고, 전기를 쓰는 장비들, 조명기나 무선 마이크 등을 쓰지 못하기도 했다. 공연 마지막 날까지 내리던 비는 세트를 철거할 때가 되자 멎더니 다음 날 거짓말처럼 높고 푸르른 하늘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심하게 농락당한 거 같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속에서 비를 맞은 공연이 달라졌다. 내리던 비를 흠뻑 맞으며, 관객도 배우도 피어나는 풀처럼, 비에 젖어 노는 아이들처럼 싱그러워졌다. 그제야 알았다. 너무 오래 비를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처럼 식물처럼 바람과 비를 맞는 일, 하늘 아래 벌어지는 어떤 사건에 온몸을 싣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임상영양사가 말하는 위암 환자 4단계 식사법 “딱 2개월만 따라하세요”
- 카드로 계산하려는데 점원이 말한다 “swip or tap!”
- 오래 앉아있어 굳은 하체… 3분 만에 시원해지는 근막 풀기
- 간질병 걸린 아들 위해 죽은 아기 머리를…1933년 ‘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전말
- 해달은 왜 짝지을 때 수컷이 암컷 코를 물어뜯을까
- [굿모닝 멤버십] 자산 관리의 치트키? 수십 년 세금 안 내고 수익 극대화하는 법
- 퇴직 연금 이율이 2% 미만? “인생에 대한 직무 유기”
- 전세난이 쏘아올린 ‘국평’ 15억 시대… 서민 학군지 벗어난 ‘가성비 분당’ 평촌
- 원·달러 환율 한때 1500원 돌파...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 트럼프, 이란 향해 “대화 너무 늦었다…방공망·지도부 사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