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충성 서약서’ 쓴 與의원들
‘파란장미 시민행동’이라는 친문(親文) 단체가 최근 여권(與圈) 의원들에게 서약서 서명을 반(半)강요했다. “국회의원 ○○○는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반드시 실현하기를 원합니다.” 종교 집단 기도문 같은 도입부는 이렇게 이어진다. “국회의원으로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문재인 대통령께서 임기 내에 검찰 개혁의 양대 과제를 완수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이 행정 수장인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라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명시한 헌법에 어긋난다.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정부에(66조),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101조)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특정 정파(政派)의 일원이기 이전에 입법부 구성원으로서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할”(헌법 46조) 의무가 있다. 국회의원 선서(국회법 24조) 역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10명 가까운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 의원이 ‘대통령께서’ 운운하는 이 문건에 서명했다. 헌법 수호 의무를 내팽개친 것과 다름없다.
“국회를 유신시대 유정회 국회로 퇴행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야당 대표 시절 새누리당에 했던 비판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새누리당은 표결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새누리당이 따라야 할 준거(準據)는 헌법, 복종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라고도 했다. 당시 야당 중진들도 가세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인가.”(박병석) “국회의원은 대통령 신하가 아니다.”(정세균) “그런 충성 서약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지겠는가.”(추미애)
그런데 불과 6년 후 극성 친문 지지층이 전화·문자 폭탄을 동원해가며 ‘대통령 충성 맹세서’를 요구하고 있다.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점에선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를 계승한 유신문파회(維新文派會)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토록 삼권분립 원칙을 강조했던 대통령은 물론, 현 국회의장,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모두 침묵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적어도 ‘대통령 보위(保衛)’를 맹세하는 저런 서약서까진 쓰진 않았다.
1973년 출범한 제9대 국회에서 유정회 의원은 219석 중 73석으로 약 33%였다. ‘대통령 친위대’가 국회를 장악하자 행정부도 국회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의원 대우는 차관~차관보급까지 격하됐고, 국회 답변을 부처 국장들이 했다(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2021년 현재도 이미 행정부 곳곳에선 “국회 질의 따윈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유신문파회’의 독소(毒素)가 국회 울타리를 넘어 행정부·사법부까지 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파란 장미의 꽃말 중 하나는 중독(中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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