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학대 피해 아동을 제대로 분리하려면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2021. 1.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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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구속 피고인 호송 버스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치며 날카롭게 울었다. 그 모두의 눈물에는 분노를 넘어 원통함이 스며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귀한 생명을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음에 깊이 원통하여 울면서 묻고 있다. 왜 세 번씩이나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를 분리해내지 못했냐고.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이 사건은 작년 10월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청과 보건복지부는 그로부터 약 50일 후 사건을 인식한 듯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를 낸다. “아동학대 두 번 신고되면 즉시 분리 보호한다.” 이어서 아동복지법을 재빨리 개정해 “1년 이내에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에 대하여 현장조사 과정에서 학대 피해가 강하게 의심되고 재학대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공무원이 아동을 분리하도록 했다.

학대받는 아동이 하루라도 빨리 그 학대 장소에서 구출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대답은 회피한 채, 앞으로는 신고 횟수에 따라 아동을 분리하겠다는 동문서답인 것이다. 이 조치는 현장에 ‘2회 신고=아동 분리’라는 위험한 사인을 주기에 충분하다. 2회 신고 시 기계적으로 아동을 분리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실무상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첫째, 1회 신고라도 바로 분리되어야 할 아동이 분리되지 않을 수 있다. 2회 신고 시 분리한다는 말을 행정편의적으로 해석하면, 1회 신고가 들어오면 한 번 더 신고가 들어올 때까지 분리를 보류하기 쉽다. 최초 신고로 출동했더라도 바로 아동을 분리해야 하는 사건을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면피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기계적 분리 과정에서 아동의 심리가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학대 피해 아동이 갑작스러운 분리로 인한 분노와 공포를 호소한다. 욕설이 난무하는 집이지만 자기만의 공간에서 애착 물건을 통해 위안을 얻던 아이는 갑자기 낯선 곳에 동떨어져 공황장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가해자가 나가야지 왜 내가 집에서 나와야 하냐고 화를 내는 아이가 있다. 분리를 경험하는 아동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셋째, 분리된 아동이 갈 곳이 없다. 전국의 학대피해아동쉼터는 50개 정도이다. 2019년 이 쉼터에 보호된 아동의 숫자는 1044명이다. 그중 390명이 남아 있기에, 빈자리는 654개이다. 그런데 2019년 재학대 피해 아동 숫자는 2776명이다. 얼핏 보아도 재학대 피해 아동의 숫자가 쉼터의 빈자리보다 거의 5배 많다. 이미 지금도 쉼터가 포화상태인데 신고 횟수만 차면 분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분리를 잠정 중단할 경우, 정작 1회 신고에서 바로 분리되어야 하는 아동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넷째, 이미 악용되고 있다. ‘2회 신고=아동 분리’가 발표되자, 양육권 다툼 중인 부부 일방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대방을 아동학대로 허위 신고하고 있다. 아이를 빼앗아오기 위해 악용하는 것이다. ‘2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혼란스럽다. 같은 기관에만 2회 신고인지, 다른 기관에 신고된 횟수도 포함하는지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신고받은 기관끼리 신고 사실을 실시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신고 횟수의 누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분리되어야 할 아동이 그동안 제대로 분리되지 못한 이유는 모호한 분리 기준 때문이 아니다. 온몸의 멍을 몽고반점이라고 우기는 가해자 말만 믿고 돌아가는 ‘비전문성’과 ‘책임회피’ 때문이었다. 신고 횟수에 따른 기계적인 아동 분리는 공무원의 면책을 위한 개악이다. 학대 피해 아동을 구해내는 일이 민원 사건으로 안일하게 취급되지 않도록 아동복지법 제15조의 “1년 이내에 2회 이상” 문구는 조속히 삭제되어야 한다. 횟수에 관계없이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적시에 아동을 분리해야 아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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