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와 공매도, 균형이 필요하다[동아광장/하준경]
상승-하락 다양한 의견 시장 참여하면 자산가격 쏠림 불안정 막을 수 있어
시장 신뢰 높일 제도개선 논의할 때다
지금 어떤 자산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되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일단 비쌀 때 이것을 판 다음 나중에 싸졌을 때 다시 사는 것이 적극적 투자전략이다. 10억 원짜리 자산이 있을 때 이것을 지금 10억 원에 팔고 나중에 똑같은 것을 3억 원에 되살 수 있다면 자산 보유 상태는 그대로인 채 차액인 7억 원을 벌 수 있다. 문제는 애초에 이 10억 원짜리 자산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하느냐다. 이런 경우 이 자산을 남에게 빌려다가 팔아서 현금을 챙긴 후 동일한 자산을 나중에 사서 수수료와 함께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이런 방식이 공매도다.
공매도는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와 거울 속 영상 같은 대칭관계를 갖는다. 요즘 크게 늘어난 빚투도 따지고 보면 현금을 공매도하는 것과 같다. 현금을 빌려다가 주식으로 바꾼 후 현금의 상대적 가치가 떨어졌을 때, 즉 주가가 올랐을 때 이것을 다시 현금으로 바꾸어 이자와 함께 빚을 갚고 수익을 챙기려는 것이 빚투다.
빚투나 공매도나 모두 남의 자원을 빌려서 자산가격 변동에 베팅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둘 다 위험하다. 시장의 변화 방향을 잘못 짚으면 남에게 손실이 파급될 수 있으니 안전장치는 필수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투자들을 아예 막아버리는 게 더 나을까. 그렇진 않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금지가 최선은 아니다. 다양한 방향으로 베팅하는 참여자들이 시장에 공존해야 거래도 원활해지고 자산가격이 적정하게 형성된다.
만약 어느 자산에 대해 빚투는 되는데 공매도는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어떨까. 자산가격 상승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남의 돈을 빌려서까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반면 그 반대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와 같은 적극적 참여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비대칭적 상황에선 자산가격이 불안정해지기 쉽다. 작은 충격이나 대중 심리의 변화가 시장의 급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시장에 참여시키고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은 배제한다면 쏠림현상이 더 쉽게 나타난다.
우리는 오랜 기간 빚투와 공매도 간 불균형이 심한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히 목격했다. 주택시장이 그 예다. 집값 상승을 확신하는 이들은 연소득의 몇 배를 갖은 명목으로 대출받아 빚투에 나설 수 있지만 집값 하락을 믿는 이들은 집을 공매도할 방법이 없다. 수시로 쏠림이 나타나고 불안이 커진다.
자산시장의 이런 부작용을 불완전 참여 문제라고도 한다. 영국 워릭대의 로저 파머 교수는 자산가격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가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산시장이 과도하게 변동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자산시장 거품이 클 때 현 세대와 다른 견해를 가진 미래 세대가 시장에 들어와 공매도로 자산을 팔 수 있다면 거품이 애초에 커지지 않을 것이고 가격 불안정성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현실에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파머 교수는 중앙은행과 정부는 시장 참여가 불가능한 이들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자산시장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적극적 거시건전성 정책이 통화정책의 금융시장 안정 기능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한다.
작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주식 공매도 재개 문제도 다양한 사람들의 고른 참여를 통한 자산시장 불안 방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직접투자든 간접투자든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시장 신뢰를 높이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 빚투와 공매도 모두 위험이 큰 만큼 건전성 규제는 더욱 철저히 해서 투자 실패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은 막아야 한다. 불법 거래는 더 면밀히 감시하고 처벌도 실효성 있게 해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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