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3D프린터로 '출력'하는 시대.. 건설 로봇이 던진 일자리 숙제[인사이드&인사이트]
이는 콘크리트 3차원(D) 프린터를 이용해 지난해 말부터 독일 건설업체인 페리(PERI)사가 짓고 있는 3D 프린팅 건물 건설현장이다. 380m² 면적에 3층짜리 집 한 채를 짓기까지는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사람이 철근을 용접하고, 콘크리트를 쌓아 올렸던 과정을 3D 프린팅 로봇 한 대가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 건물이 완공되면 실제로 일반에 임대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3D 프린팅 건물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건설산업에서 스마트 건설 기술 도입이 활발해지면서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건설 로봇 도입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건설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안전성이 높아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전체 고용의 7%를 차지하는 건설 일자리가 줄면서 고용난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집도 ‘출력’하는 시대… 건설 로봇 도입 박차
과거 건설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 로봇 도입이나 자동화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도입에는 비교적 뒤처져 있었다. 제조업은 공장에 로봇을 한번 설치하면 그대로 계속 쓸 수 있지만 건설업은 매번 현장이 바뀌는 데다 사람의 손이 닿아야 마무리되는 작업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건설현장의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로봇 도입에 속도가 붙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보행 로봇인 ‘스폿’을 건설현장에 도입했다. ‘로봇 개’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 로봇 전문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이다. 네 다리가 달려 경사진 곳이나 계단까지 걸어 다닐 수 있다. 여기에 360도 카메라,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 다양한 첨단 장비가 결합됐다. 스폿이 자율 보행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면, 이 정보를 3차원 건물 정보 모델링(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데이터와 통합해 전기, 설비 공사 등 후속 공사와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데 활용한다.
현대건설도 건설 로보틱스 분야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람의 손과 팔만큼 정밀한 작업이 가능한 ‘다관절 산업용 로봇’ 활용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현장 관리용 ‘무인 순찰 로봇’을 비롯해 용접, 페인팅 등 반복 작업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시공 작업용 로봇’을 현장에 시범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입주한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 2차’ 조경구조물 제작에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기도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은 제조업의 로봇 기술을 이제 도입하는 단계”라며 “건설업은 제조업화를 통해 생산 방식을 혁신하는 게 현재의 목표”라고 전했다. 최근 건설사들이 활발하게 도입하는 모듈러 방식 건축이 대표적이다. 공장에서 부품 만들 듯 건설에 필요한 모듈을 미리 공장에서 제조한 뒤 현장에서 조립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자동화 기술이 도입돼 효율성이 높아지고, 날씨 변화 등 환경이나 현장 사고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높아지는 ‘안전관리’ 요구, 신기술 도입 집중
건설현장 안전 기준이 깐깐해지는 점도 로봇 도입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으로 건설현장의 안전관리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서도 안전관리를 주요 평가 항목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의 로봇 도입은 사람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대우건설은 경부고속도로 직선화 1공구 현장에 안전관리 로봇 루키를 투입했다. 현장을 원격으로 보면서 안전 관제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대건설은 싱가포르의 ‘투아스 핑거3 매립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워에 코팅제를 도포하는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의 도장 로봇과 유사한 원리의 로봇을 도입해 사람이 손으로 하던 작업을 자동화했다. 높은 곳에 매달려 일해 사고 발생 위험이 높고 날씨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문제를 로봇 도입으로 해결한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안전보건 혁신 어워드’를 수상해 향후 수주에 가산점을 받게 된다”며 “안전관리가 성과와 직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건설 로봇 활용과 이를 통한 자동화는 건설 인력 고령화 문제를 푸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한국 전체 건설 근로자 중 고령 근로자(55∼79세)의 비중이 2020년 31.9%로 2013년(22.7%)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특히 일용직 노동자 등을 제외하고 건설업에 지속적으로 종사한다고 볼 수 있는 건설기술인 중 40대 이상이 전체의 80.1%(2020년 기준)나 된다. 20대는 2.6%에 불과하고, 30대는 17% 수준이다. 특히 30대는 전년 대비 인력이 감소했는데 이는 20대에 건설업에 진입하더라도 그 이후 인력이 대거 유출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현장 밀집도를 떨어뜨리고, 중대재해법 도입으로 건설현장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건설 로봇 도입 등 스마트 건설 기술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 자동화 vs 일자리 갈등 우려
하지만 건설 로봇 도입은 일자리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건설업이 한국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가 넘는다. 제조업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도입되며 전통적인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듯 건설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건설현장에서는 자동화에 따른 갈등이 가시화하고 있다. 건설현장의 소형 타워크레인을 놓고 벌어진 타워크레인 노조의 파업이 대표적이다.
2019년 타워크레인 노조는 소형 타워크레인에 대한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파업에 돌입했다. 무게 3t 미만 자재를 옮기는 데 사용되는 소형 타워크레인은 조종석이 따로 없다. 사람이 타지 않고 지상에서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다.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보니 건설현장에서는 소형 타워크레인을 속속 도입했다. 소형 타워크레인은 2013년만 해도 전국에 20대도 안 됐지만 2018년 1800대 이상으로 급증해 전체 타워크레인의 18%를 넘어서게 됐다. 타워크레인 노조는 여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안전 문제를 앞세워 파업을 한 것이다.
물론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이나 안전기준이 미흡해 사고 위험이 높고 일부 현장에서 무자격자가 조종하기도 하는 등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건설현장 자동화와 이로 인한 근로자들의 위기감이 있었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 소형 타워크레인의 규격을 명확히 하고 기존에 3일 2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운전 자격을 딸 수 있었던 것을 실기시험을 도입해 통과하도록 하는 등의 안전관리 방안을 내놓고서야 갈등이 수습됐다.
아직까지는 건설 로봇 도입에 비용이 많이 들고,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돼 검증을 받은 기술이 적기 때문에 로봇과 사람의 일자리 갈등이 당장 가시화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와 반발을 제때 해소하지 않으면 신기술 도입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진경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스마트건설지원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 기술 도입이 전통적인 일자리는 줄여도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기존 건설 인력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일자리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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