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산골 마을 겨울 풍경

서정홍 시인 2021. 1.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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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새해가 밝아온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산골 마을회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지난해, 가을걷이 마무리할 무렵에 농사일에 지쳐 말할 힘도 없다는 샘골 할머니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놈의 농사일은 죽어야 끝나지. 끝이 없는 자식 농사하고 똑같은 기라. 얼릉 땅이 꽁꽁 얼어붙어야 쉬지. 안 그라모 우찌 쉬겠노.” 산골 할머니들이 죽자 사자 일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나마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겨울이 있기 때문이리라.

서정홍 시인

산골 할머니들은 겨울이면 집집마다 아궁이 장작불 때놓고, 아픈 몸 이끌고 마을회관에 모인다. 수다도 떨고, 떡국과 호박죽도 끓여 먹고, <6시 내 고향>도 보고, 가벼운(?) 험담도 늘어놓으며 지낸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로 마을회관 가까이도 못 가고 있다. 오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도시에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정홍아, 산골은 코로나19랑 아무 상관없제. 물 좋고 공기 맑은 데서 사는 자네가 부럽네. 좁은 아파트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까 자네 생각이 절로 나네그려. 나도 시골로 내려가야 하나 고민 중이라네.” 나는 이런 전화가 올 때마다 비슷한 대답을 한다.

“무신 소리고. 도시가 힘들모 산골도 힘들다. 더구나 자식들이 다 도시에 사는데 우찌 마음이 편하겠노. 마을 어르신들은 코로나19로 자식들도 집에 오지 말라고 하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아예 오지 말라고 펼침막까지 붙여 놓은 마을도 많다니까. 산골도 사람 사는 곳인데, 자식이든 친구든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살맛이 나제. 도시보다 조금 덜할 뿐이지. 세상 사는 거 다 비슷하다네. 세계화 시대니 코로나고 미세먼지고 피할 길이 없다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라는 말까지 쓰는 세상이잖아.”

이런 대답을 푸념 삼아 해 놓고 전화를 끊고 나니 어쩐지 쓸쓸했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왔을까. 지난해를 돌아본다. 1월은 역대 가장 따뜻한 달, 2월과 3월은 고온현상, 4월은 낮은 기온이 이어지면서 역대 가장 쌀쌀하고, 6월은 7월보다 더웠다. 50일 넘게 이어진 장마로 고추는 탄저병이 들어 다 뽑아내고, 생강은 뿌리가 썩어 수확도 하지 못했다.

“야야, 이런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다야. 마스크 쓰고 살아야 하는 코로나도 처음이지만, 콩이고 팥이고 농사가 이리 안 되는 해는 처음인기라.”

지난해, 여든한 살인 느릿재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구촌 전체가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산길을 걸으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여보,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감자를 심을 수 있을랑가? 아이들 좋아하는 옥수수와 땅콩도 심어야 하는데?” 늘 잘 웃고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아내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을 한다. “그리 예민해 가지고 우찌 살라고 그라요. 아직 봄이 오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 농사지을 생각을 하요. 고마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합시다요.”

아내 말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예민한 건가?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성격에 주의를 기울이면, 예민하지 않은 사람보다 자기 일을 더 잘 성취해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좋고말고.

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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