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트럼프 오판한 정부, 바이든엔 다를까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2021. 1. 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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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휴, 다행이다. 혼돈과 막장의 에이전트인 트럼프가 가고 질서와 품위의 화신인 바이든 시대가 열렸다. 한국과 북한의 정보기관들도 이제 마피아 사고방식과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가 만들어 놓은 이 비틀린 인간에 대한 프로파일링 상자를 창고에 집어넣어도 된다. 하지만 천성이 비관주의자인 나는 트럼프 분석에서 한계를 보인 정부가 과연 바이든 이해에서는 유능할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트럼프 이단아와 달리 수십년간 워싱턴 정가를 지켜온 인물인데 우리는 그를 잘 알지 않을까? 글쎄, 나는 우리가 알던 미국 민주당을 빨리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과연 한국 정부는 지금 바이든 시대의 자유주의가 10년 전 우리가 알던 자유주의가 아니라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을까? 바이든 외교노선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 겸 경희대 교수는 이제 미국은 ‘공세적 자유주의’ 시대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이상주의자들이 보편성의 미명하에 단일한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목표로 지나친 개입주의 외교 노선을 취해온 걸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권위주의 체제를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다원주의적 세계를 형성해가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생태, 군축, 지구적 공공재 등 영역에서 권위주의 국가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세계와의 적극적인 강화를 시도하는 혼합 전략을 추구하자고 조언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 새로운 화두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연대에 적극 공헌하면서도 인권, 쿼드 등 불편한 이슈의 제3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중국과 북한을 온정주의적이거나 희망적 사고로 방관하거나 혹은 보편성의 미명하에 정권을 정치적으로 흔드는 시도를 넘어서는 해법과 소통 말이다.

미국 자유주의·국제주의 가치의 살아있는 교과서였던 아이켄베리 교수는 자신의 구상이 너무 비자유주의적인 내용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익살스럽게 묻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농담할 때 진짜 본심이 드러난다고 한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는 역대 민주당 정부와 달리 미국 내 노동자와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국제질서를 구축하려고 한다. 이는 곧 냉정한 계산과 이익의 실용주의가 대폭 강화된 외교안보 노선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를 ‘비자유주의적 자유주의 노선’의 시대라 부른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과거 오바마 정부와 이란 간의 핵 군축 합의 모델에 대한 바이든의 찬사를 한국 정부는 낭만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란과 협상 초기에 미국은 이란이 뭐라고 불평하건 제재의 기조를 굳건히 유지했다. 핵 관련 합의나 궁극적 협정, 그리고 경제공동체 협정 등에서 더욱 문턱을 높이고 깐깐하게 굴 바이든과 외교안보팀은 몇 년 전 그들이 아니다.

아이켄베리 교수의 보수적 변신의 근저에는 중국 변수가 있다. 한국에는 아직까지도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과거 중국을 포용노선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미국 민주당 인사들의 트라우마와 분노를 잘 모른다. 과거 소비에트와의 냉전은 쉬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번 중국과의 게임은 승부를 알 수 없다는 걸 미국은 이제 초당적으로 알아버렸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야 할지 모르는 기후 위기와 팬데믹의 뉴노멀은 어쩌면 권위주의 체제만이 지구상에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가진다. 오바마 시기를 거치면서 더욱 현실주의자가 된 바이든은 허공에 맨주먹을 휘두르다 자기만 넘어진 트럼프와 달리 효과적인 ‘벨벳 해머’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신노선과 다양한 정치, 경제적 비상 플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이 바이든 시대의 외교를 잘하기 위한 지름길은 있다. 그건 국내외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미국보다 더 다원적이면서 진보적인 자유주의를 실행하면 된다. 걱정스러운 점은 수십년간 천민 보수시대를 겪었던 진보주의자들이 법적 지배와 견제와 균형, 공정한 시장질서 등 자유주의를 잘 경험해보지 않아 바이든의 진심과 구상을 해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정신적으로도 노장 바이든보다 더 노쇠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성차별과 기후 위기 대응 등의 미래가치에서 바이든은 훨씬 젊은 투사이다. 차별금지법과 기후비상조치를 거북한 이슈로 취급하는 한국 주류 정치인들과는 태도가 확 다르다. 유홍준 교수의 명언 중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자유주의자로 별로 살아오지 않은 우리는 과연 바이든을 정말 아는 걸까?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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