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전직 대통령 사면과 언론의 정치적 행위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2021. 1. 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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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021년 1월1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에서 뇌물 관련 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하고 새누리당 공천개입 혐의로 확정된 징역 2년을 더해 총 22년을 선고했다. 이미 형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더불어 형식적 사면 요건이 됐다는 미명 아래 언론에서 사면론이 뜨겁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18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을 앞두고 언론들은 기자회견의 가장 큰 화두가 사면과 관련한 대통령의 언급이라는 식의 틀을 짜고 있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사면과 관련하여 언급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청와대가 사면과 관련한 질문에 어차피 기자회견 때 질문이 나오지 않겠냐고 했다는 이유로 문 대통령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힐 예정이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입장 … 등에 관해 질문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 것이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언론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면과 관련해 정치인들이나 언론이나 국민적 통합, 포용 등을 언급한다. 그런데 갤럽 조사에 따르면 반대 54%, 찬성 37%라는데, 산술적으로 접근해서 54%라도 통합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54% 국민을 버리고 37%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게 맞을까? 최소한 찬성이 50%라도 넘었을 때 ‘대통령 맘에 안 들더라도 더 많은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통합’이라고 주장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더 큰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또 통합과 화해를 주장하려면 인정과 사과가 우선이다. 사법부의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들과 사면이 필요하다는 정치인들은 인정과 사과는커녕 일련의 사법 절차를 정치 보복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경향신문의 ‘국정농단 사법절차 마무리된 박근혜, 이제 참회하라’는 주장이 절차상 적절하다.

사면을 주장하고, 대통령에게 사면과 관련한 견해를 밝히라고 압박하는 언론들이 과거 정치인 사면과 관련하여 어떤 주장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 언론들은 사면 절차가 진행될 때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정치인 사면은 안 된다고 압박했다. 그 중대 범죄와 관련된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라고 할지 아니면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가 통치 행위라고 강변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최소한 형이 확정된 이후에야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의 의미를 형이 확정됐으니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는 듯 접근하는 기자들의 행태가 놀랍다. 사법부의 형 확정은 사면하기 위한 수순이었다는 뜻인가. 법적 절차에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지 의문이다.

의제 설정이론이라는 말이 있다. 찬반을 떠나 언론이 사면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만으로도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사면’이 주요 의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부상한다. 언론이 ‘사면 군불 때기’라는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정론직필의 기자라면 사면 관련 질문 대신 사면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마땅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에 근거한 진실 보도가 언론의 기본이지만, 언론사의 경향성에 따라 언론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의견에는 동의라는 사회적 평가가 뒤따른다. 동의는 애초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지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달리했던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근거와 논리를 갖춘 의견이어야만 한다. 지금 언론은 자신들의 여론 ‘선동’이 그 정도 요건을 갖추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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