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소통하며..상처주지 않고 쓸 수 있길"

선명수 기자 입력 2021. 1. 1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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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학평론 부문 성현아 당선자, 소설 부문 양지예 당선자, 시 부문 윤혜지 당선자.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문학을 통해 나의 경계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21년에도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신인들이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주인공들인 윤혜지 시인(37), 양지예 소설가(37), 성현아 평론가(28)를 지난 1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윤혜지 시인

먼 길 돌아…소중했던 시가 ‘일’이 됐다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쓰고 싶습니다.” 시 ‘노이즈 캔슬링’으로 당선된 윤혜지 시인은 “아직 시인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였다. 졸업 후 취업을 해 일하다가, 회사를 그만둔 뒤로는 프리랜서 작가로 스토리텔링 등의 일을 해왔다. 윤 시인은 “그 일도 보람 있고 즐거웠지만, 다른 글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습작을 시작하게 됐다”며 “한 문장 한 문장이 도약하는 느낌의 시가 좋았고, 산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고 했다.

기다려온 소식이지만 부담감도 컸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순도 100%의 기쁨만 있을 줄 알았는데,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따라오더라고요. 시 쓰기가 ‘일’이 되면 남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럼 시가 싫어지지 않을까 겁이 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시가 저에겐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함부로 꺼내놔도 되는 것인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의 가장자리만 돌며 살아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온 것 같습니다.”

윤 시인은 ‘가능하면 오래, 그리고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 목소리’라는 심사평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큰 야심이나 목표 없이 쓰는 것의 즐거움을 느꼈던 처음처럼, 그 마음을 유지한 채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그리고 끈덕지게 쓰려고 합니다.”

양지예 소설가

독자로 남을 줄 알았는데…버티니 되네요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평생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로만 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소설 쓰기를 시작하면서 이게 내 길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좋았습니다.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고 기뻐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버티니까 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나에게’로 소설 부문에서 당선된 양지예 작가는 “매해 신춘문예 때마다 여러 신문사에 재활용 A4 용지를 기증한 끝에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저작권 분야에서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서른살 무렵 시작한 글쓰기가 독자에서 퇴근 후 글을 쓰는 작가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양 작가는 “처음엔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당선작인 ‘나에게’는 갓 담임을 맡은 교사인 화자와 적록색약을 가진 학생 소린의 이야기다. 소설의 말미 소린의 엔크로마 글라스를 선글라스로 오해했던 화자가 이 안경을 쓰고 바라본 세상이 창문 밖 벚꽃 풍경을 통해 그려진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전율이 끼치는 놀라운 장면”이라는 평을 들으며 당선작으로 결정됐다. 양 작가는 “엔크로마 글라스를 처음 써본 사람들을 찍은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처음으로 색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고 했다. “이제 혼자만의 글쓰기가 아니라, 독자들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공감을 얻어도 좋고 때로 부딪히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현아 평론가

효율성의 세상에서 남겨지는 것들에 주목

성현아 평론가는 ‘점성의 히스테리아-김이듬론’으로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동시 당선된 ‘2관왕’ 당선자이기도 하다. 학부에 이어 대학원에서도 국문학을 공부한 그는 김이듬론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를 여타의 성폭력 피해자와 다른 관점으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민족주의라는 시금석이 있을 때만 피해자를 포용하는 것과 달리, 김이듬의 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면에서 같은 결로 접근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평론은 작품 읽기가 선행돼야 하는 글쓰기라는 점에서 매력 있게 다가왔다고 했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제가 잘하는 일은 남겨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시간 낭비가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문학이 제게 제일 먼저 알려줬습니다. 여러 가치를 품을 수 있는 문학의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외된 자리엔 언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그 자리에 언어를 돌려주기 위해 언어를 부수는 시인이 있고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가가 있다면, 그걸 정확히 읽고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을 길어 올리는 게 문학평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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