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검사가 진범 확인만 했다면 억울한 사람 없었을 것"
[경향신문]
“검찰 명백한 직무유기·직권남용, 시민의 인권 묵살하고 짓밟아”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범인 몰려 10년 복역한 최씨의 ‘재심’ 도와
승소에 결정적 공헌…2016년 붙잡힌 진범은 유죄 확정, 복역 중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했던 최모씨(36)와 그의 가족(어머니·여동생)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최씨에게 13억여원을, 그의 가족에게 총 3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2013년 시작된 재심과 무죄 판결, 국가 배상 판결까지 8년간의 여정이 일단락된 순간이었다.
이날 최씨와 그의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 곁을 지킨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69)이다. 황씨와 박 변호사는 2000년 8월부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상을 함께 밝혀왔다. 황씨는 18년 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해 검거했다. 현재 그는 2014년 퇴직 후 군산에서 행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황씨는 “배상 판결까지 끝났으니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은 것 같다”며 “최씨가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부터 치면 21년이 흘렀네요. 그 세월 동안 늘 가슴에 담고 있었던 일인데 액수를 떠나 청구한 대로 판결이 거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억만금을 준다 해도 최씨가 받은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없겠지만 남은 인생 그림을 잘 그려 갔으면 해요.”
황씨는 이 사건의 실체는 바로잡혔지만 남겨진 교훈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과 구성원들이 오히려 무고한 시민의 인권을 묵살하고 짓밟아 버리는 행위는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떠올리기도 싫지만 진범을 검거했을 당시 검사가 용의자를 한 번만이라도 불러 ‘범인이 맞냐’고 확인하고, 도장만 찍었으면 다 끝날 수 있었어요.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명백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었죠”
그는 “지금 돌이켜보니 피해자는 한둘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최씨는 택시기사를 흉기로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후 박 변호사의 설득으로 2013년 4월 재심을 신청했고, 2016년 11월 결국 최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같은 해 12월 진범 김모씨가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가 확정됐다. 김씨를 숨겨줬던 친구와 경찰관 한 명은 목숨을 끊었다. 최씨는 2017년 5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나도 ‘미친 사람’이라는 등 별 소리를 다 들어야 했어요. 느닷없이 강력반에서 지구대로 발령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지요. 몸이 망가져 뇌경색으로 한참을 고생했어요. 피해자의 한 사람인 셈이죠.”
하지만 지금 그는 한 ‘청년’을 구해냈다는 안도감에 평온하다고 했다. 그 시작은 박 변호사와의 만남이었다.
2013년 늦봄, 박 변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재심 신청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황씨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손사래를 쳤지만, 박 변호사의 설득 끝에 재심을 돕기로 했다.
“결정적인 것은 최씨가 사건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어요. 최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마음이 이상해지더군요. 그가 억울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따라나선 것이 전국을 헤매고 다니게 된 거죠.”
재심 과정에서는 검찰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검찰이 최씨 무죄 선고 이후 다시 진범 수사에 착수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증거자료를 요구해서 줬고 참고인 진술도 해줬어요. 진범 검거에 협조해 달라고 해 원팀으로 움직이기도 했지요. 최씨 무죄 선고 4시간 만에 진범 김씨의 소재를 파악해 검거하지 않았다면 도주했을 겁니다.”
재심과 배상 판결을 이끈 박 변호사를 “정의롭고 욕심이 없는 선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그는 “청춘을 빼앗긴 최씨가 나에게 아버님이라 불러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울컥하더라”고 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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