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검사가 진범 확인만 했다면 억울한 사람 없었을 것"

글·사진 박용근 기자 입력 2021. 1. 17. 21:10 수정 2021. 1. 1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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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촌오거리 살인' 진범 최초 검거, 황상만 전 형사반장

[경향신문]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을 처음으로 검거했던 황상만 전 전북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지난 16일 자신의 행정사사무소에서 그간 심경을 밝히고 있다.
“검찰 명백한 직무유기·직권남용, 시민의 인권 묵살하고 짓밟아”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범인 몰려 10년 복역한 최씨의 ‘재심’ 도와
승소에 결정적 공헌…2016년 붙잡힌 진범은 유죄 확정, 복역 중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했던 최모씨(36)와 그의 가족(어머니·여동생)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최씨에게 13억여원을, 그의 가족에게 총 3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2013년 시작된 재심과 무죄 판결, 국가 배상 판결까지 8년간의 여정이 일단락된 순간이었다.

이날 최씨와 그의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 곁을 지킨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69)이다. 황씨와 박 변호사는 2000년 8월부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상을 함께 밝혀왔다. 황씨는 18년 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해 검거했다. 현재 그는 2014년 퇴직 후 군산에서 행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황씨는 “배상 판결까지 끝났으니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은 것 같다”며 “최씨가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부터 치면 21년이 흘렀네요. 그 세월 동안 늘 가슴에 담고 있었던 일인데 액수를 떠나 청구한 대로 판결이 거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억만금을 준다 해도 최씨가 받은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없겠지만 남은 인생 그림을 잘 그려 갔으면 해요.”

황씨는 이 사건의 실체는 바로잡혔지만 남겨진 교훈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과 구성원들이 오히려 무고한 시민의 인권을 묵살하고 짓밟아 버리는 행위는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떠올리기도 싫지만 진범을 검거했을 당시 검사가 용의자를 한 번만이라도 불러 ‘범인이 맞냐’고 확인하고, 도장만 찍었으면 다 끝날 수 있었어요.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명백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었죠”

그는 “지금 돌이켜보니 피해자는 한둘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최씨는 택시기사를 흉기로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후 박 변호사의 설득으로 2013년 4월 재심을 신청했고, 2016년 11월 결국 최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같은 해 12월 진범 김모씨가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가 확정됐다. 김씨를 숨겨줬던 친구와 경찰관 한 명은 목숨을 끊었다. 최씨는 2017년 5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나도 ‘미친 사람’이라는 등 별 소리를 다 들어야 했어요. 느닷없이 강력반에서 지구대로 발령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지요. 몸이 망가져 뇌경색으로 한참을 고생했어요. 피해자의 한 사람인 셈이죠.”

하지만 지금 그는 한 ‘청년’을 구해냈다는 안도감에 평온하다고 했다. 그 시작은 박 변호사와의 만남이었다.

2013년 늦봄, 박 변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재심 신청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황씨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손사래를 쳤지만, 박 변호사의 설득 끝에 재심을 돕기로 했다.

“결정적인 것은 최씨가 사건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어요. 최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마음이 이상해지더군요. 그가 억울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따라나선 것이 전국을 헤매고 다니게 된 거죠.”

재심 과정에서는 검찰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검찰이 최씨 무죄 선고 이후 다시 진범 수사에 착수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증거자료를 요구해서 줬고 참고인 진술도 해줬어요. 진범 검거에 협조해 달라고 해 원팀으로 움직이기도 했지요. 최씨 무죄 선고 4시간 만에 진범 김씨의 소재를 파악해 검거하지 않았다면 도주했을 겁니다.”

재심과 배상 판결을 이끈 박 변호사를 “정의롭고 욕심이 없는 선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그는 “청춘을 빼앗긴 최씨가 나에게 아버님이라 불러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울컥하더라”고 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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