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계획 '봇물'..집값 안정 '가물'

송진식·김희진 기자 2021. 1. 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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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부, 연일 공급 확대 강조하지만
시장은 개발 신호로 해석하며 들썩
강남 3구 상승폭 6개월 만에 최대
서울시장 예비후보들도 개발 카드
대선 방불 ‘뉴타운급’ 공약 내기도

정부가 연일 “공급 확대”를 강조하면서 연초부터 서울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17일 한국부동산원의 1월 둘째주 주간아파트가격동향 자료를 보면 한 주간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07% 올라 지난주 상승폭(0.06%)보다 0.01%포인트 높아졌다.

서울의 주간 가격 상승폭은 지난달 초 0.03% 수준이었지만 한 달 새 상승폭이 갑절로 늘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조정대상지역 지정 등 규제가 전국으로 확대되자 ‘똘똘한 한 채’를 찾아 다시 서울로 구매수요가 몰리는 것으로 분석하는 한편 정부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고 공급 확대에 전력하고 나서면서 개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것 역시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게 정부 심산이지만 이를 개발 신호로 해석하는 시장에선 되레 집값 상승폭이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시행 등으로 그나마 잠잠했던 민간 재건축 시장마저 규제 완화를 기대하며 오름폭을 키우고 있어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 바람이 이뤄질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 강남 3구는 6개월 내 최대 상승폭

대단지가 몰려 있어 민간 재건축 시장의 ‘풍향계’로 통하는 강남 3구의 가격은 전국적인 집값 폭등세에 비하면 작년 하반기부터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한국부동산원의 1월 둘째주 기준 주간 아파트가격 전국 시계열 자료를 보면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강화한 정부의 ‘7·13 부동산대책’ 이후 12월 초까지 강남 3구의 주간 상승폭은 0.05%를 밑돌았고, 8~10월 석 달간은 ‘마이너스’ 상승폭을 기록하는 등 한동안 가격 상승이 멈춘 적도 있다.

강남 3구가 상승폭을 키우기 시작한 시점은 12월 둘째주 들어서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창흠 국토부 장관을 구원 등판시킨 시점과 일치한다. 변 장관은 장관 내정과 동시에 “공급 확대”를 들고나왔고, 서울에는 특히 “많은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도 공급 확대에 힘을 확실하게 실어주면서 연초부터 강남 3구에선 신고가를 경신하는 매매가 속출했다. 정부는 재초환 등 재건축 규제 완화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에서는 “공급 확대를 위해선 재건축 시장 역시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중이다.

그 결과 1월 둘째주 강남·서초구는 0.10%, 송파구는 0.14% 가격이 올라 거의 정확하게 7·13 대책 이전 수준(강남 0.11%, 서초 0.09%, 송파 0.13%)으로 돌아갔다. 강북지역 재건축 대장주가 몰려 있는 양천구 역시 목동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0.07% 상승했는데, 이는 지난해 6월 5주차(0.07%) 이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개발 기대감은 비단 아파트 단지로만 쏠리는 게 아니다. 정부가 역세권 주변, 저층 주거지 등에 대대적인 주택 공급을 언급하면서 다세대·연립 역시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 집계 자료를 보면 지난 14일까지 신고된 다세대·연립 매매거래 신고 건수는 445건으로 아파트 거래량(221건)보다 2배 이상 많다. 통상 아파트 거래량이 다세대·연립 거래량보다 많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정부가 지난 15일 공공재개발 후보지역으로 8곳을 선정해 발표하면서 추가 후보지역 지정을 예고한 터라 다세대·연립을 둘러싼 개발 기대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제2 뉴타운’ 규모 서울시장 후보 공약

정부가 공급 확대로 서울에 불을 지폈다면 최근 봇물 터지듯 나오는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의 공약은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대적 재개발·재건축이 시작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민간 재건축 시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여당 후보군에서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만가구를 서울에 공급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잇달아 개발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던 ‘뉴타운’ 규모의 개발 공약을 내세운 후보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14일 부동산 공약을 공개하며 “민간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통해 향후 5년간 주택 총 74만6000가구 공급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시장 당선 시 재선 임기(4년)까지 염두에 둔 공약이라고는 해도 안 대표의 74만가구 공약은 거의 대선에서나 볼 법한 공약에 가깝다. 서울에 신도시를 따로 조성하지 않는 한 안 대표의 공약은 86만가구 조성을 목표로 추진됐던 과거 뉴타운 사업과 유사한 방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 용산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뉴타운을 계기로 정비사업지구로 선정된 뒤 사업이 무산돼 정비계획만 남은 지역이 서울에 무수히 많다”며 “안 대표의 공약은 이런 지역에서 사업을 대대적으로 재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양도세 중과 유예 등 부동산세 관련 논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양도세 유예 고려는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시장에선 기대감이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전문가는 “양도세 부담이 커진 상태이고 임대차법으로 전세계약이 4년으로 늘면서 팔고 싶어도 매물을 못 내놓는 다주택자들도 제법 많다”며 “다주택자 매물을 정말 유도하려면 적어도 향후 2년가량은 양도세 중과를 유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매매 대비 증여 비중이 지난해 상반기 17.4%에서 하반기에 2배 수준인 35.7%까지 급증한 것 역시 다주택자들이 세 부담을 의식해 증여로 돌아선 결과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1월간 서울지역 아파트 증여 건수는 2만1508건으로 2017년 7408건 대비 3배가량 늘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가 임대차법 개정 등 대대적인 부동산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등 야권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조정대상지역의 주택을 매매할 때 중과되는 양도소득세를 올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수십차례의 부동산 규제대책 남발로 국민 10명 중 7명이 규제지역에 갇혔고, 거래절벽은 더욱 심화됐다”며 “부동산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만큼 거래세 인상을 유예해 매물을 유도하고 시장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송진식·김희진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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