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셰르파의 K2 겨울 첫 등정
[경향신문]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에는 해발 8000m가 넘는 산이 에베레스트부터 시샤팡마까지 14개 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보다 낮지만, 등반이 더 어렵기로는 2위 K2(8611m)나 사망률 최고인 안나푸르나(8091m)가 꼽힌다. 엄홍길·박영석처럼 14좌를 모두 오른 등반가는 국내외에 많다. 그러나 겨울철엔 등정하지 못한 유일한 곳이 K2였다. 정상 부근은 바람이 시속 200㎞를 넘기도 하고 영하 60도까지 떨어진다. 영화 <버티컬 리미트>나 <K2>의 무대가 된 것도 이 산의 험난함을 짐작하게 한다.
마침내 올겨울에 처음 K2 꼭대기를 밟은 이들이 나왔다. 네팔인 10명이 16일(현지시간) 이룬 쾌거다. 주인공은 그간 다른 나라의 원정 산악팀을 돕던 셰르파들이다. 늘 역사의 조연으로 비춰졌으나 이번에 당당히 주연이 된 것이다.
셰르파는 현지어로 ‘동쪽사람’이란 말로, 티베트 동부 출신이 많다.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같이 오른 인물도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였다. 정상에서 찍힌 사진의 주인공이 힐러리가 아닌 텐징이어서 누가 최초인지 한참 논란이 일었다. 힐러리는 1999년에야 회고록에서 텐징이 정상 앞에서 “난 언제라도 오를 수 있다”며 양보해줬다고 털어놨다. 이밖에도 셰르파의 기록들은 많다. 2001년 당시 16세 최연소 나이로 에베레스트에 등극한 인물이나, 첫 도전만으로 14좌를 오른 최초 등반가도 셰르파였다.
이들에겐 특별한 신체 능력이 있을까. 미국 UC버클리대 연구진은 티베트인에게는 산소 사용과 밀접한 ‘슈퍼 운동선수 유전자’ 관련 DNA의 돌연변이가 있다고 밝혔다. 해발 4000m 이상에선 해수면보다 산소가 약 40%나 낮아 일반인은 극심한 피로와 두통을 느낀다. 티베트인은 혈중 산소포화도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도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히말라야는 셰르파에게도 위험한 곳이다. 지금까지 에베레스트 등반 사망자의 3분의 1은 셰르파다. “산은 다시 내려오기 위해 오른다”는 말도 있다. 대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는지 겨울의 K2 등정 역사가 보여준다. 셰르파의 의미도 돌아보게 하는 소식이다.
전병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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