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사람 죽이는 경제'는 안된다

한겨레 입력 2021. 1. 17. 18:06 수정 2021. 1. 1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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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민주당이 그런 비판을 예상했을 텐데도 왜 그랬을까. 실력이 없다거나 원칙 없는 타협을 해서 그렇게 됐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로 큰 정치적 타격을 받는다면 그래도 그렇게 했을까? 나는 산업재해 문제가 '경로의존의 덫'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누군가 내게 “지난해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한마디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12월24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정의당의 농성장에서 나온 말을 꼽고 싶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찾은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중대재해법 제정에 야당인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아 문제라고 했다. 그러자 김미숙씨는 “여태까지 (민주당이 원한 법안은) 여당이 다 통과시켰지 않느냐”며 “많은 법을 통과시켰는데 왜 이 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순간 할 말을 잃고 당황해하는 김 원내대표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민주당이 다른 법안들을 힘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중대재해법에 대해선 달리 생각한다. 이 법을 그런 식으로 통과시켰다면 나는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일관성이 없느냐고 추궁한다면, 나는 이런 답을 드리고 싶다. “매일 7명이 일하다 죽어나가는 걸 구경만 해온 우리는 모두 미쳤다!” 산업재해 사망은 상당 부분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누더기법’이 되고 말았다. 이미 민주당을 향해 거센 비판이 많이 쏟아졌기에 비판을 보태고 싶진 않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건 민주당이 그런 비판을 예상했을 텐데도 왜 그랬을까 하는 점이다. 실력이 없다거나 원칙 없는 타협을 해서 그렇게 됐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로 큰 정치적 타격을 받는다면 그래도 그렇게 했을까?

물론 큰 정치적 타격은 없었다. 그렇다면 좀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산업재해 문제가 ‘경로의존의 덫’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경로의존(path dependency)은 한번 경로가 결정되고 나면 경로 이용의 타성과 경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시스템의 관성 때문에 경로를 바꾸는 게 매우 어려워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런 경로는 우리의 의식에도 형성되는 것이어서 우리 모두의 성찰을 요구한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초고속 압축성장은 인권을 중시한 건 아니었다. 50년 전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민족사적 금자탑’ 운운하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건설 중 사망자가 77명이나 나왔다. 1977년 사상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것도 격한 자축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 이면엔 전태일 열사와 같은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르렀지만, 사회적 약자를 희생으로 한 개발독재의 습속은 우리 모두의 의식에 깊게 새겨진 경로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그간 긍지를 느껴온 케이(K)-방역이 사실상 사회적 약자들은 외면해온 것도 바로 그런 의식의 경로 때문이었을 게다.

‘중단 없는 전진’을 외치며 살아온 우리에게 ‘안전 우선’은 사치스러운 것으로까지 여겨졌으며, 그런 심성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를 토대로 형성된 기업 시스템과 관행은 큰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지속돼왔다. 이를 단기간에 바꾸긴 쉽지 않다. 강력한 처벌이 해결책일 수 없다는 주장엔 일말의 진실은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그런 시스템과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을 평소에 얼마나 해왔으며, 정부·정치권·언론 등은 얼마나 상시적인 관심을 보였느냐 하는 점이다. 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비로소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닌가.

경제계·재계 인사들께 묻고 싶다. 매일 7명 사망, 이대로 좋은가? 왜 그간 침묵만 해오다가 노동자들의 분노 폭발이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순간에야 들고일어나는가? 그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자업자득 아닌가?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 이전에 스스로 알아서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자유 의지가 전혀 없는가? 산업재해를 전담하는 상시적인 다자협의기구의 구성을 제안하면서 정부와 사회의 협력을 구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면 기업에 대한 존중과 신뢰도 높아질 텐데, 왜 자꾸 로비와 압력 위주의 방어에만 몰두하는가? 경제, 정말 중요하다. 정치가 수렁에 처박혀도 나라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건 경제 덕분일 게다. 모든 경제인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러나 ‘사람 죽이는 경제’는 이제 더 이상 안 된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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