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바이든 시대' 매경 외교안보전문가 특별좌담회

한예경,안정훈 2021. 1. 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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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낯선 미국'은 저물고 다시 '익숙한 미국'이 돌아올 전망이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편한 건 아니다. 바뀐 문법에 더 빠르게 적응해야한다는 숙제가 남겨졌다.

매일경제 '외교안보전문가 특별좌담회'에 서면으로 참석한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주러시아 대사)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트럼프 시대에 통했던 우리 외교안보 전략을 수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의 첫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냈던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없는 호주나 일본 같은 국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미동맹을 운영하려 하지 말고 '맞춤형 동맹전략'으로 나아가자고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장수 외교장관 기록을 갖고 있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책임있는 호응'이 중요시되는 시대"라며 "관심사안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동맹다움' 부터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21세기북스)>라는 저서를 발간한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심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대원칙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이 3시, 중국이 9시 방향에서 잡아 당긴다면 우리는 1시반쯤 있어야한다"고 꼬집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을 맞아 우리 외교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윤영관: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직으로 임명된 정책결정자들과 긴밀한 소통채널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조속한 시일 내 정상회담을 가져 양국 협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측이 정상회담 시 어떤 메시지를 미 측에 전달할지 전략적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 해결, 경제 살리기, 사회적 통합, 국내 개혁과제 등 시급한 국내문제가 산적해 있어 북한 문제는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북한이 얼마나 도발을 자제하며 기다려줄지 알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빠른 시일 내 북측에 전달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 이와 관련해 역할을 해주면 좋을 것이다.

윤병세: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여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 호주 그리고 과거 한국의 보수정부 못지 않게 신뢰할만한 동맹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초기부터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 첫번째 정상회의 때처럼 북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 입장을 강의하려 하거나,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전후 동맹관계 재조정 문제를 우리 고위층 인사가 먼저 제기했다 미측의 반발을 사는 식이 되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상황이 될 것이다.

위성락: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탄핵할 정도로 미국 민주당의 혐오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해온 일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으리라 보기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을 중시하면서 한미 간 상호 조율된 접근을 강조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사항이 대중 대응, 한미동맹, 북핵문제에 걸쳐 '3각 파도'처럼 다가올 수 있어 우리의 운신 공간이 줄어들 수 있다.

우리의 급선무는 바이든 당선인의 동아시아·한반도 정책을 면밀히 파악한 뒤 그 기초 위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호의를 유발할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큰 구도에서 미국에 먼저 협조한 뒤 한반도 문제를 설득하는 게 낫다. 당장 고위급 접촉으로 우리 생각을 밀어붙이려 하기 보단 먼저 매력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전달할 메시지가 먼저고 전달할 채널은 그 다음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 인사가 '오바마 3.0'이라 불릴 정도로 과거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대북 정책도 '전략적 인내'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나.

윤영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전략적 인내'의 배경에는 수차례에 걸친 북한의 선제적이고 공세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북측은 2009년 5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의 기대를 무산시켜버렸다. 2012년 2월 29일에는 미북 간 합의 후 곧바로 3월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미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2013년 5월 3차 핵실험 뒤 오바마 행정부는 거의 포기상태에 들어갔고 그것이 '전략적 인내'로 연결됐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와 지난 2018년 맺은 싱가포르 합의 이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보하면서 조심스럽게 관망하고 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기에 인물이 비슷하다고 해서 꼭 '전략적 인내'로 되돌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여러 어려운 국제문제를 미국 혼자 힘으로 풀 수 없다고 생각해 동맹과의 협력을 중시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비핵화를 대가로 경제지원·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하는데 미국 혼자 다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자주의의 틀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때 이란 핵합의(JCPOA) 관련 실무협상에 직접 참여해 타협을 이뤄낸 사람이 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다.

그러나 다자주의 형식으로 가더라도 미북 간 협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 우리 정부도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윤병세: 바이든 당선인의 "김정은은 깡패(Thug)" 발언이나 토니 블링큰 미 국무장관 내정자의 "김정은은 폭군(Tyrant)" 발언에서 보듯 바이든 행정부 내정자들은 북한 지도자와 북한 정권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 인식이 있다. 따라서 비핵화 진전이 없는 한 대북제재 지속 등 압박 정책 기조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실상 완성 단계에 있는 북핵 위협을 방치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제재유지와 함께 대화와 협상 가능성도 계속 열어 놓을 것이다. 이 경우 블링큰 내정자가 이미 '가장 좋은 모델'로 언급한 바 있는 '이란식 핵협상 모델'이 주요 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으로서는 다자협상 틀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이란 모델 선호 등에 비춰 볼 때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중장기적 상황 관리 중심으로 나아가려고 할 수도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위성락: 바이든 당선인측 인사들은 빌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때 북한과 협상한 경험이 많다. 전문성이 높은 점은 장점이지만, 북한을 잘 알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깊어 우리 정부가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단점이다.

전략적 인내는 바이든 측이 인정하지 않고 싫어하는 용어다. 따라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며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현실을 감안해 단계적 접근을 수용하겠지만, 북한에 악용되지 않도록 최종목표를 분명히 하고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앞당기는 실무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협상 틀과 관련해선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이란 모델처럼 한반도 주변 당사자국과 북한이 5:1 구도를 만들어 비핵화를 추진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의 성공에 도취돼 정상 간 담판 그리고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식 점진적 접근에 집착하기에 이러한 미국의 제안에 응할 가능성은 작다. 우리가 경계할 것은 미국이 비핵화 중간 단계로 핵 감축 방안을 제기할 때 북한이 이를 최종목표인 것처럼 변질시키는 일이다.

-최근 국내와 미국 조야에서 '한미동맹 균열' 지적이 자주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 출범 이후 한미동맹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까.

윤영관: 한미 간 동맹외교의 초점이 상당히 바뀔 것이다. 트럼프 정부 때는 주로 관심사가 경제적 이득, 즉 돈 문제였다. 그래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난제가 됐고 민주주의나 동맹의 문제는 뒷전으로 빠져있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관련 발언에서 보듯이 그가 한미동맹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아 우리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줬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동맹의 가치를 중시한다. 민주주의 동맹으로서 한국이 얼마나 미국과 공동보조를 맞춰 나갈 것인가가 핵심 관심사가 될 것이므로 협력하는 자세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캠벨 내정자가 최근 언급한 'D10'(민주주의10개국연합) 등이 현실화 된다면 한국도 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병세: 바이든 행정부 하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주한미군 감축 문제에서 크게 부담을 덜 것이다. 반면 전시작전권 전환, 한미연합군사훈련,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반중연대 '쿼드' 참여 요구 등은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북핵 위협 공유 및 대응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린치핀) 역할을 충실히 하는 한편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제 행동규범 준수 등 공동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동맹다움'을 지켜 나가야 한다.

나아가 북한의 핵무장 가속화에 따라 생기는 실존적 안보위협인 '핵 인질화 상황'을 상쇄하기 위해 확장 억제력 전진 배치 등의 전략을 미측과 협의해야 한다.

위성락: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의 리더십의 회복을 외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동맹국의 '책임있는 호응'을 주문할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 당선인은 한국의 독자행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보다 인내심이 적을 가능성이 높으며 북한 문제, 중국 문제, 한일 관계 등에서 협의가 원만치 않으면 마찰이 생길 것이다.

정부로서는 중국에 대응해 한국과 더 연대하길 바라는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악화된 일본과의 관계도 미국의 압력이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문제 관련해서는 당장 3월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문제가 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훈련을 하는 쪽으로 판단하면 북한은 도발로 대응할 것이므로 한미 간에 논란이 심화될 소지가 크다. 방위비 문제는 비교적 다루기 쉬울 것이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운용, 유엔사 역할, 전작권 반환에 대해선 동맹 중시 성향인 바이든 행정부가 반발할 수도 있다.

-최근 정부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이 '반인권적 국가'로 비판받는 상황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윤영관: 한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에게 반인권적인 국가로 인식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다른 외교 목표,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존중받는 규범과 원칙을 존중하는 나라로 인식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많아지고 깊어질 때 북한인권도 개선될 수 있다는 입장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초반 동유럽지역 국가들의 인권개선이 동·서방 진영간 관계개선과 '헬싱키 프로세스'라는 포용정책의 진전 이후에 있었다는 점, 중국이 리처드 닉슨 미국 행정부의 포용정책 이후 인권문제가 개선됐다는 점 등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에도 비핵화 추진과 함께 미북 간 정치적 관계의 개선과 발전이 실질적인 인권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윤병세: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법안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한국이 민주화된 이래 최초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2년 연속으로 유엔 북한인권문제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하고, 지난 2019년 탈북 선원을 강제북송했으며, 지난해 9월 서해에서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 등에서 보여준 일련의 실망스런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통과될 경우 미국 등 국제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심각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미리 불필요한 국가적 비용을 치르지 않도록 조치했어야 하는데 정부 내 그러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우리 정부가 반인권 정책을 옹호하다 주한미군 철수 등 엄청난 비용을 치른 것을 교훈 삼아 지금이라도 개선할 부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금년 중 개최가 예상되는 미국 주도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에 큰 부담이 될 것이며, 미 국무부의 연례 인권 보고서에도 한국에 관한 부정적 의견이 포함돼 전세계에 배포될 우려가 있다.

특히 미국 하원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에서 조만간 청문회가 개최될 경우 한국 정부의 인권정책이 40여 년만에 미국 의회에서 논의되고 경우에 따라 추가 조치가 뒤따르는 치욕의 날이 될 수도 있다.

위성락: 법을 만들기 전부터 인권 침해나 국제사회의 반응과 관련된 측면을 세심하게 배려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운용의 묘를 살려 책 잡힐 소지를 줄여가야 한다. 이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에 한미 간 호의와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 없도록 잘 다뤄야 한다.

-최근 우리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한일 관계가 더욱 얼어붙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후 양국 관계에 중재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나.

윤영관: 바이든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한일 두 나라 모두 미국의 동맹이고 민주주의 국가이니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고 촉구해올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전략상 대중국 압박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캠벨 조정관 등이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는 법률적인 접근을 뛰어넘어 이제 정치·외교적인 해결을 모색할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한일관계를 악화된 상태에서 계속 끌고 나가는 경우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클 것이다.

윤병세: 미중 갈등 심화 속에서 동맹 외교 복원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때 보다 더 한·미·일 협력 강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위안부 합의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타결 등에 상당한 역할을 한 인사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악화된 것에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블링큰 내정자도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직을 수행하며 한·미·일 차관급 전략대화를 만들고 연 2~3회씩 이를 개최하는 등 3자 외교안보 협력을 매우 중시하는 인사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이 수교 이후 최악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성락: 바이든 행정부는 관계를 복원하도록 독려할 것이나 압력은 한국 쪽에 더 기울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절차나 형식 측면에서 일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이 가중되면 한국은 끌려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기 보다 선제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바이든 당선인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초당적 민간 현인회의'를 구성하여 해법을 의뢰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먼저 일본기업 압류자산 현금화 등 추가조치를 중단시킨 뒤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일본측 수출규제 조치와 우리측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동시 철회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올해는 미국 대통령 취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해로 미중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우리 외교는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윤영관: 이쪽이냐 저쪽이냐 화끈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식으로 서두르는 것은 신중치 못한 접근법이다.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도 수없이 많다. 지정학적 특수성과 북한문제를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맹을 포기하거나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치뤄야 할 결정적 순간이 목전에 다가온 것도 아니다. 외교에서는 항상 타이밍이 중요하다.

먼저 미국에게는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한 대전제 하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불안정한 북한 변수 등을 충분히 고려해 한미동맹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자고 말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 특수성이 없는 호주나 일본 같은 국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미동맹을 운영하려 하지 말고 '맞춤형 동맹전략'으로 나아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중국에게는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국가정체성 차원에서 미국과 협력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윤병세: 한미 동맹에 확고히 기반해서 한중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대 원칙과 중심을 견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균형외교나 등거리 외교는 이러한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미중 갈등의 영역이 복잡다단해지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 동맹의 핵심 이익과 가치와 관련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구분해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중국의 보복을 받았거나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호주, 아세안, EU 등 우방국들과의 공조 체제 구축을 통해 지혜와 대응 방안을 공유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 간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 그리고 미국의 확장 억제력 전진배치를 이끌어 냄과 동시에 그에 따른 북·중의 반발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만일 바이든 당선인과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실현될 경우 이는 미측에 매우 부정적 신호를 주게 될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위성락: 중요한 것은 주권과 자주를 타협할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국주의, 중화질서 복원심리를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미국 편에 설 수는 없다. 지정학과 경제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나 중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좌표와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3시 방향으로, 중국은 우리를 9시 방향으로 잡아당긴다고 할 때 대체로 1시나 1시30분 정도의 좌표를 선택해야 한다. 중국이 지나친 행태를 보이면 2시 방향으로 이동했다가 문제가 해소되면 되돌아오는 식의 다이나믹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리 = 한예경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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