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소부장 펀드는 '성투'한 것일까요?

이완 입력 2021. 1. 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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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정치반숙]이완의 정치반숙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8월 농협은행을 찾아 필승코리아펀드에 가입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재테크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수익률 90%를 낸 펀드 일부를 환매해 금융상품 5개에 각각 1000만원씩 투자를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개미투자자들이 본받을 만한 ‘성투(성공투자)’를 한 것일까요?

문 대통령이 높은 수익률을 올린 펀드는 지난 2019년 8월에 가입한 ‘필승코리아펀드’입니다. 엔에이치(NH)농협금융에서 만든 상품으로, 당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항하자는 분위기 속에서 소재·부품·장비 분야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입니다. 문 대통령은 펀드 가입을 위해 농협을 찾아, “저도 가입해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국민들께서 이렇게 함께 참여해서 힘을 보태 주시기를 바라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수출규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부터 돈을 보태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였습니다.

문 대통령의 펀드는 1년반 만에 ’대박’이 났습니다. 지난 1년간 수익률이 65%에 이릅니다. 청와대는 지난 13일 문 대통령의 펀드 일부 환매를 알리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으로 수출규제의 파고를 이겨낸 성과(를 냈다)”라고 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할 때도, 이번 환매 소식을 전할 때도 기사를 쓴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펀드의 가치를 측정해주는 기준가를 살펴보니, 지난해 12월부터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이 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을 살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펀드 운용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 이 펀드가 보유한 주식은 삼성전자(21.8%), 삼성에스디아이(SDI·3.88%), 현대모비스(3.24%), 현대차(2.21%), 케이비(KB)금융지주(1.94%) 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지난해 말 삼성전자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펀드 수익률 역시 크게 높아진 것입니다.

경험 많은 증권사 직원은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소부장에 투자한 펀드로서 대박난 게 아니고 일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에 투자한 펀드라 수익률이 잘 나온거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같은 아이티(IT) 관련 기업들을 전부 다 넣은 펀드였고, 지금은 시장이 좋아서 수익을 내기 쉬운 상황이었다.”

실제 이 펀드가 보유한 작은 회사 주식은 대형 상장사 주식보다 훨씬 적은 비율이었습니다. 상아프론테크(3.24%), 씨에스윈드(2.10%), 한솔케미칼(1.94%), 미래컴퍼니(1.70%) 등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필승코리아펀드는 “기술 국산화,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품, 소재, 장비 분야 국내 기업에 투자”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투자는 풀뿌리 중소·중견 기업과는 거리가 멀었고 대형 회사들의 주가가 오른 덕을 본 것입니다.

물론 삼성전자도 일본이 반도체 제조공정에 필요한 소재 등의 수출을 막으며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펀드가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고 해서, 수출규제 극복을 위한 투자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주가가 오르는데 조금 도움은 되었겠죠.

문 대통령이 펀드를 환매해 새로 투자를 한 것도 주식시장 과열로 인해 펀드 수익률이 생각치도 못하게 올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난해말부터 관련 보도가 나왔고, 대통령이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닌데 수익이 너무 커지자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던 것이죠. 그래서 청와대가 이참에 한국형 뉴딜 펀드도 함께 홍보해보자 이렇게 생각이 기울었던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한국형 뉴딜이 붙은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 골고루 분산투자를 했습니다. 삼성뉴딜코리아펀드·KB코리아뉴딜·아름다운SRI그린뉴딜1·TIGER BBIG K-뉴딜ETF·HANARO Fn K-뉴딜디지털플러스ETF 입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이같은 투자를 보고 갸우뚱해합니다. “아직 민간에서 한국형 뉴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시작도 안했다. 대통령이 투자한 펀드는 디지털이나 그린 관련 상장사 주식을 사는 것이어서 이들 기업이 ‘한국형 뉴딜’에 투자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지난해 한 외국 증권사는 매서운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홍콩계 증권사인 CLSA는 한국형 뉴딜 펀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정부 지원이 없이도 충분히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배터리·인터넷 투자 열기에 정부가 기름을 붓고 있다. 정부가 취해야할 자세는 비이성적 낙관으로 가득한 시장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지난주 유가증권시장은 정말 열기로 가득찼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11일 장중 한때 사상 처음으로 3200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5일 동안 사들인 주식은 10조원(순매수 기준)에 가깝습니다. 가장 유리한 재테크 방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주식’을 꼽은 이는, 역대 조사 이래 가장 높은 25%에 달했습니다. 종전에는 11%(2020년 7월)가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갤럽이 1000명을 조사해 15일 내놓은 결과입니다.

정치권에 있는 ‘경제통’ 인사는 청와대가 대통령 펀드 같은 이벤트보다 정책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형 뉴딜 잘되길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그건 정책 리더십으로 보여줘야지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투자 대상을 다양화하는 차원에서 자본시장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해야할 일은 기업 공시의 투명성을 높이고 불공정 거래를 막는 등 개인투자자들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 박근혜 정부 때도 정책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통일펀드’와 ‘청년희망펀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장에서 모두 잊혀진 이름입니다. ‘한국형 뉴딜’이 진짜 정책을 통해 ‘성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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