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물에 대해 쓴다
* 편집자주: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 중입니다. 접수기간(2월23일 마감) 동안,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를 주제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존 칼럼니스트들의 기고를 매주 초 게재합니다.
7년 전 나는 13년간 활동했던 노들장애인야학을 그만두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도시락을 싸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하루 종일 신문을 읽었다. 신문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작은 학교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다가 갑자기 우물 밖으로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가만히 앉아 세상을 읽는다는 건 굉장한 기분이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종로의 명소와 그 역사를 알려주는 강좌를 듣게 되었다. 종로는 야학이 있던 곳이었으므로 내겐 청춘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 강사가 해준 종로 이야기는 모두 처음 듣는 것이었고, 그것이 나를 한껏 고양시켰다. 강사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기대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나는 그것을 짓기 위해 쫓겨난 청계천 노점상들이 싸우는 모습을 수년 동안 보았다. 그들 너머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던 디디피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흉물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강사는 말했다. “그 건축엔 5천억이라는 큰돈이 들어간 만큼 예술적으로도 관광자원으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간의 내 편협함을 기쁘게 반성하면서 그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러면서 다음에 올 어떤 이야기를 기다렸다. 예술적 가치는 높지만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생존의 터전을 잃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유럽 유학도 다녀왔고 조선시대 역사까지 훤히 알고 있는 강사가 지금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의는 거기서 끝이었다. 디디피는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왜인지 몹시 허탈해 한참 동안 빈 강의실을 떠나지 못했다.
그에게선 아무런 의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쫓겨난 노점상들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에겐 보이고 그에겐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에겐 보이고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대해 열심히 듣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여서 우물 밖 세상에 대해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물 밖 개구리처럼 보였던 그도 자신의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우주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누군가의 우물이라는 것, 이 세계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나의 우물을 바라보았다.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다시 신문을 펼쳤다. 신문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 쫓겨난 사람들, 나에겐 너무나 생생한 존재들, 나를 키운 우물, 그러니까 한 시절 나의 우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빛나고 화려한 것들을 위해 기꺼이 쓸어버려도 좋은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쓸려나가는지도 사람들은 모르는 그런 존재 같았다. 신문이 보여주는 세계엔 나의 우물이 완벽하게 빠져 있었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가 우물 속에서 맹렬히 솟아올랐다. 그때 <한겨레>로부터 ‘세상읽기’라는 칼럼을 제안받았다. 그 시기가 아니었다면 나처럼 겁 많은 사람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우물에서 쳐다보았던 아주 좁고 치사했던 하늘에 대해 썼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나는 그 우물 속이 얼마나 깊고 넓었는지, 얼마나 안전하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쓰고 있었다.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 너무 버거웠는데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 앓아가면서 알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였다. 저 안엔 고통과 비참만이 가득할 거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는 사람들에게 이 경이로운 존재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차별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저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야기. 많이 괴롭지만 그보다 더 많이 행복한 이야기. 세상의 끝에서 그 끝을 최전선으로 만들어 이 세상의 지평을 넓혀가는 이야기. 나는 더 많은 활동가들이 글을 써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의 우물 안이 궁금하다. 모두의 우주 같은 건 관심도 없다.
홍은전 ㅣ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알림]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리영희, 정운영, 조영래, 박완서…. 더는 만날 수 없지만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지성의 이름입니다. 시대의 죽비가 되고, 웃음이, 눈물이 되었던 <한겨레> 칼럼 필자들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필자들이 그 자리를 이고 집니다.
이제 <한겨레>는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한칼’, 시작합니다. 함께해주세요.
■ 누가 : 할 말이 있는 지구인 누구(개인, 글쓰기모임 등 단체)든
■무엇을 1 : 전체 전문 주제(제한 없음)와 각 소재 등이 담긴 6~12회 기획안, 그중에 포함될 칼럼 2편(편당 2000자)과
■ 무엇을 2 : 공통 질문에 대한 300자 이하의 답변을
■언제 : 2월23일 22시까지 6주 동안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 보내실 곳 : opinion@hani.co.kr (이메일 제목: <한칼 공모> 성함)
* 공통 질문(답변은 모두 300자 이하)은 4가지입니다.
―지원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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