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코로나 키드의 생애

한겨레 2021. 1. 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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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비드 세대라 불렸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한 2019년생부터 당시 청소년까지 해당하니, 그해 겨울 고2였던 나는 세대의 끝물인 셈이다.

내 기억 속의 10년 전 일상은 회복되지 못했지만, 코로나는 '넘겼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지난 10년간 진사친(진짜 사람 친구)을 한명도 못 사귄 것 정도? 대면 세상의 맛이란 걸 본 나는, 마치 아날로그의 낭만을 간직한 채 디지털 세상에 편입된 낀 세대처럼, 모든 좋은 건 과거의 것이라 여기는 감상에 젖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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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ㅣ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우리는 코비드 세대라 불렸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한 2019년생부터 당시 청소년까지 해당하니, 그해 겨울 고2였던 나는 세대의 끝물인 셈이다. 한때 우리 세대에 관한 분석들이 유행했다. “학력이 낮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공감 못 했지만 맞는 얘기도 더러 있었다. 모든 타인을 잠재적 보균자로 간주하는 접촉 기피증, 모든 표면이 끔찍이 더러워 보이는 결벽증, 성장기의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호흡기 장애, 면역력 결핍 등이 흔한 건 사실이다. 살균이 지상 과제였던 우리에겐 좋은 균을 적절히 ‘겪으며’ 면역력을 기를 여유가 없었으니 당연하다. 우리만큼 국가 통제에 익숙한 세대도 없다는 지적은 틀렸다. 익숙이라니? 우린 통제를 요구했다, 적극적으로. 다만 불공정한 통제에 분노할 뿐.

사회학자들이 포착 못 한 건 사랑의 감소였다. 거리낌 없이 연애를 즐긴 소수도 있었지만, 나는 철저한 비대면 생활을 영위한 다수에 속했다. 귀찮게 백신 접종이나 음성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데이트 사이트 따위에도 흥미가 안 갔고, 더 큰 이유는 타인과의 접촉, 특히 타액(비말 포함) 혐오 때문이었다. 단순 성욕이라면 온라인에서 훨씬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사랑이 줄어든 대신 혐오가 늘었다. 우리 사회만 그런 건 아니었다. 해외여행이 재개된 2022년의 프랑스 여행을 잊을 수 없다. 프랑스를 고른 이유는 백신 여권 없이 방문 가능한 유일한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그곳이 백신 음모론의 진원지라 접종률이 세계 최저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나 또한 “백신 맞으면 불임 된다”는 소문을 굳게 믿은 엄마 등쌀에 가능한 한 접종을 피하던 시기였다. 나와서 본 세상은 사뭇 달랐다. 세계가 케이(K)방역을 우러러 보는 줄 알았던 나를 기다리던 건 혐오였다. 유럽에서 난 한국인이 아니라 ‘박쥐 먹어서 이 사달을 일으킨 중국인’이었다. 미묘한 인종차별은 물론, 계란 세례를 받는 수모까지…. 양 나라를 겪고 내린 결론은 백신을 맞은 나라와 안 맞은 나라 모두 혐오는 못 막았구나, 였다. 한마디로 모두가 패자였다. “유일한 승자는 중국이지, 총 한번 안 쏘고 3차 대전에서 승리했으니!”라던 택시기사가 떠오른다.

어느덧 2029년이 왔다. 내 기억 속의 10년 전 일상은 회복되지 못했지만, 코로나는 ‘넘겼다’. 병이 해결돼서가 아니라, 병에 대한 감각이 바뀌어서. 아무도 독감 사망자수에 관심이 없듯 감염자 수가 늘어도 이젠 기사조차 안 보인다. 당국이 조치를 내리면 적당히 요령 부리며 할 건 다 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다른 걱정, 가령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더위, 추위, 장마…. 정말 ‘미쳐가는’ 날씨에 적응하기도 바쁘다. 나의 최대 고민은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이다. 스물여덟살이 되도록 직장 경력이 전무한데다, 학벌도 변변치 못한 나 같은 취준생은 기후를 핑계로 한국에 온 이민자들(“기후 난민”이란 말이 제일 거슬린다)과도 경쟁해야 한다. 난 작년 23대 총선에 투표도 안했지만, 했다면 이민자 거부 정책을 내세운 후보를 찍었을 것이다.

엄마는 날 측은히 여기지만 사실 난 괜찮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지난 10년간 진사친(진짜 사람 친구)을 한명도 못 사귄 것 정도? 대면 세상의 맛이란 걸 본 나는, 마치 아날로그의 낭만을 간직한 채 디지털 세상에 편입된 낀 세대처럼, 모든 좋은 건 과거의 것이라 여기는 감상에 젖곤 한다. 그럴 땐 차라리 코로나 이전 세상을 아예 모르는 애들이 부럽다. 아무튼 이것만 빼면 나란 사람, 나름 잘 적응해왔다. 적응이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가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존재”라고 했다는데,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고 인간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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