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액세서리" 의족 모델 다시 런웨이로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2021. 1. 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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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패션쇼 ‘절단 비너스’ 시작 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마네씨.
 
일본에서 모델과 아이돌로 활동하다 원인도 불분명한 불치병으로 한때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꿈도 희망도 포기했던 한 10대가 당당히 런웨이에 무대로 복귀해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좋아해 앞서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모델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1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밝은 웃음

“카메라 앞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게 웃었다던 아마네(19)씨의 미소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부터 고통이 커지면서 찡그린 얼굴이 됐다.

그는 어느 날부턴가 손가락이 혈기 없는 보라색으로 변해갔고 코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날이면 손과 발의 통증이 밤새도록 계속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밤이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일이 일상이 된 그는 병원에서조차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오른쪽 발가락이 괴사(생체 내의 조직이나 세포가 부분적으로 죽는 일)해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됐다. 또 체중은 28kg까지 줄었다.

장래가 촉망받던 모델에겐 사형선고나 다른 없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병은 그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괴롭혔다. 병명을 알게 된 건 중학교 입학 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는 ‘육아종 다발혈관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워낙 희소한 탓과 10대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아 진단이 늦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병명이 밝혀져 치료다운 치료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에 대한 확인이 늦었던 탓에 괴사한 부분이 점점 늘어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증상이 나타난 지 약 1년 만의 일이다.

◆웃으며 다리 절단 수술

괴사한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그 날, 그는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며 그동안 잊었던 미소를 드러냈다.

“아팠고 힘들었던 일이 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또 “혼자 걸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오른쪽 무릎 아래부분을 모두 절단했지만 그는 “침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어 더 좋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기쁨에 수술 후 불과 일주일 만에 걷는 연습을 했다. 남들은 3개월 걸린다는 일을 그는 단 1개월 만에 해냈다.

그는 “혼자 걷는 일이 너무 아팠고 힘들었지만 의족을 차고 걷을 수 있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어 “자전거 타는 것도 즐거웠고 숨차게 달리는 일도 좋았다”고 기억한다.

비록 다리는 잃었어도 그렇게 그는 미소를 되찾아갔다.
지난 2019년 12월 한국 서울 여행에서 찍은 사진.
◆고통보다 아팠던 사람들 시선

병에 걸리기 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무렵. 의족을 착용할 때면 아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사람들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또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 시선은 힘들게 용기 낸 그를 옥죄여왔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불쌍해졌고 사람들 눈엔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교칙이 까다롭지 않은 곳을 선택했다. 치마 대신 여학생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행여 주변에서 의족을 알아볼까 봐 한여름에도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바지를 입었다.

그런데도 그는 “불안했다”고 말한다. 누군가 옷에 숨겨진 의족을 알까 봐 두려워 사람이 많은 곳엔 근처도 가지 못했다.

◆아름다운 액세서리

장래가 촉망받던 키즈 모델에겐 병은 두 번의 아픔을 안겼다.

치료를 위해 먹은 약으로 몸무게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시대가 변해 풀사이즈 모델이 런웨이를 걷는다곤 하지만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델계에서 비만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팠던 기억에 다리를 잃었다는 상실감,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더해 미래마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그렇게 6년이 지난 지난해 여름. 이런 그를 크게 뒤흔든 일이 눈앞에 들어왔다.
꿈을 잃고 살았던 그에게 자기와 비슷한 모습의 여성들이 당당히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본 사진 속 의족 모델들은 너무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들이 착용한 의수나 의족은 카메라 셔터에 더 반짝여 그에겐 “마치 아름다운 액세서리”처럼 보였다.

그는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남들이 알아볼까 봐 가리기에 급급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아름다운 포즈는 두 다리가 멀쩡한 모델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꽁꽁 감춰둔 의족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의족을 가리던 바지 대신 치마를 입었다. 지겹던 검정 스타킹도 벗어 던졌다. 숨겼던 의족은 친한 친구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다. 의족을 본 친구는 응원한다며 그를 다독여 줬다.

혼자 고민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에게 의족은 아름다운 액세서리가 됐다.
지난 2019년 12월 한국 서울 여행에서 찍은 사진.
◆카메라 앞에서 다시 미소

의족을 드러낸 그는 지난해 8월 온라인 패션쇼에 출연하며 6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11월에는 카메라 앞에서 다시 서며 모델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이벤트가 연기됐지만 그는 예정된 패션쇼 등을 위해 체형 관리를 하고 있다. 또 언젠가 한국에서의 활동을 기대하며 한국어, 영어 공부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는 “장애에 대한 차별이 세상에서 없어지길 바란다”며 “세계에서 활약하는 모델이 되고 싶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친했던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힘들었던 그의 아픔은 모두 지난 일이 됐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아마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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