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구장에서 쌓은 추억은 모두 소중해요" KBL 박예하 리포터

김용호 2021. 1. 17. 11: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김용호 기자] 우연히 알게 된 마이크를 드는 재미. 계획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었지만 그는 열정 하나로 스포츠계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박예하 리포터는 돌고 돌아 그리웠던 농구 코트에도 다시 서게 됐다. 그와 농구의 인연이 이제 막 다시 새로운 장을 펼쳤다. 앞으로 써내려갈 스토리가 더욱 많은 지금, 박예하 리포터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들어봤다.

 

※본 인터뷰는 점프볼 1월 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스포츠도 좋았고, 스피치도 좋았다


점프볼과 박예하 리포터는 이번이 첫 만남이 아니다. 지난 2018-2019시즌 그는 미스 강원 와일드카드 출신으로 원주 DB의 홈경기를 방문했다.당시 개문 인사에도 나섰던 박예하 리포터는 농구팬들과 함께 활발한소통을 했고, 경기 전 애국가를 부르며 소중한 추억을 하나 쌓아갔다.경기 후에는 필자와 잠시 인터뷰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 덕분일까. 코로나19 탓에 정규리그 현장을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박예하 리포터는 점프볼의 인터뷰 요청이 세상 반가웠다고 한다.

Q.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사이 직업이 바뀌었네요. 리포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제가 대학에서 모델을 전공해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간 거였는데, 그 대회 이후에 말 하는 게 재밌어졌어요. 자기소개와 무대 스피치를 준비하다보니 말을 하는 거에 흥미가 붙더라고요. 원래 직업인 패션모델은 시간이 지나다보니 아킬레스건과 무릎 상태가 안 좋아져서 다른 길로 전향도 생각하고 있었고요. 마침 스포츠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았기에 둘 모두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아나운서를 택하게 된 거죠. 그래서 2019년부터 부지런히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어요. 이미 전공에 맞는 길을 걷고 있었는데, 새로운 길로 다시 나아가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모델로 6년을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일을 다시 처음부터 배워서 시작 한다는 게 어찌 보면 무모하기도 했어요. 학원을 다니며 수업을 듣기 시작하는데 막연한 꿈인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죠. 그러다 막상 정말 도전을 할 문턱 앞에 섰는데, 제 인생 첫 공채에서 바로 합격을 한 거예요. 그래서 ‘아, 이 길이랑 인연이 맞나보다’라면서 당차게 시작했던 거죠.

Q. 리포터로서 첫 시작은 어디서 했나요.
처음엔 SPOTV로 입사해 KBL 현장 리포터 인턴으로 실습을 시작했어요. 그 활동이 끝난 이후에는 스포카도라는 회사로 자리를 옮겨 야구장도 경험할 수 있게 됐죠. 농구장으로의 첫 현장 투입도 아직 기억이 생생한가요. 그렇죠. 2019-2020시즌 초반이었어요. 정확히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서울 SK의 홈이었고, 제가 자밀 워니 선수에 대한 리포팅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날은 진짜 긴장을 많이 해서….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긴장했던 날일 거예요. 하하. 모델 데뷔나 미스코리아 출전 때보다 더 떨렸으니까요. 지금 이렇게 돌아보면 그렇게 떨었던 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해요. 그때 영상을 아직까지도 못 보겠거든요. 그래도 그런 후회가 남아서 이후에 더 많은 연습을 하게 됐고, 제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됐죠.

Q. 스포츠에 어떻게 흥미를 붙였는지도 궁금해요.
원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랑 해외축구도 많이 보고, 고향이 천안이라 배구도 많이 봤어요. 그러다 우연히 연세대와 고려대의 농구 정기전을보게 된 거에요. 그때 양교의 응원단들이 정말 뜨겁게 응원하고, 관중들까지 다들 유니폼을 입으면서 경기를 보는 풍경이 신세계였어요. 그렇게 농구에도 대학리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농구 입문이 대학리그였어요. 그때가 이종현, 강상재, 최준용 선수가 있던 황금드래프트 시기였거든요. 그러다보니 선수들을 따라 자연스레 KBL로 시선이 돌아갔고, 직관도 더 열심히 다니게 됐죠.

Q. 결코 쉽지 않게 리포터라는 직업에 적응이 된 것 같은데,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어떤가요.
솔직히 제가 처음에 야구에는 큰 흥미가 없었어요. 야구장을 가더라도진행하는 컨텐츠가 경기보다는 먹는 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거든요.그러다 야구 퓨처스리그를 가서 가까이서 선수들을 보고 경기에 집중하니 야구도 너무 재밌더라고요. 농구가 좋아서 이 직업을 시작하게 된건데, 다른 종목에도 흥미를 느끼면서 뭔가 어디를 가든 스포츠 하나로이어져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직업 만족도가 정말 높은 거죠.

Q. 만족이 있는 만큼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뭔가 특정한 순간이라기보다는, 제가 리포터를 하게 된 덕분에 단순히 팬으로서는 갈 수 없는 경기장의 구역들을 경험해볼 수 있잖아요. 그럴때마다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뭔가 그 현장의 일원이 됐다는 기분이 좋거든요. 

Q. 잠깐 리포터로서의 공백기도 있었다고요.
SPOTV에서 인턴 활동이 끝나고 나서 잠시 공백이 있었어요. 그때 기상캐스터 학원도 잠깐 다녔어요. 그런데 저랑 안 맞더라고요. 스포츠 경기장이라는 다이내믹한 공간에 있다가, 크로마키존에 서서 말을 하는 게 성향이 너무 달랐어요. 그래서 다시 스포츠 현장으로 돌아가려던 시기에 야구 퓨처스리그 리포터를 뽑는다는 공고가 떴어요. 그 전까지는 제가 지원했던 SPOTV 공채 외에 공고가 아예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원자가 엄청 몰렸는데, 면접을 3번 보고 최종 합격을 했죠. 그래서 또 ‘역시이 길이 맞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Q. 정말 인연이 있는 것 같네요. 그 치열한 경쟁 속에 3차 면접이라는 벽을뚫은 비결도 있었을 텐데요.
나중에서야 듣게 된 건데, 당시에 면접관을 보셨던 분이 제가 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면접 때도 주저함 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업계에 스포츠를 메인 분야로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는 스포츠가 너무 좋았으니까 더 돋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Q. 혹시나 3차 면접의 관문을 뚫지 못했다면, 다른 길을 걸었을까요 아니면 계속 리포터의 문을 두드렸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결국 KBL TV 리포터가 됐기 때문에 이렇게 점프볼 인터뷰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예전부터 농구와의 인연은 제가 계속 두드리면 열릴거라 생각하기도 했어요. 다른 종목도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만날거다 싶었던 거죠. 아마 그때 합격하지 못했더라도 바로 다른 길을 가기보단 스포츠 안에서 계속 도전을 외쳤을 것 같아요.
돌아온 농구장, 모든 순간이 추억

박예하 리포터는 그렇게 포기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돌고 돌아가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맞는 이 길을 쉽게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그 덕분에 박예하 리포터는 결국 농구장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2020년 11월 23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아침부터 열렸던 2020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트라이아웃. 이 행사가 끝난 뒤 KBL의 공식 SNS 계정에서 라이브 방송 하나가 온에어된다. 그리고 KBL TV의 새로운 리포터라며 바로 박예하 리포터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Q. KBL TV 리포터로도 활동을 하게 됐어요.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이것도 공채 오디션이 있었어요.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오디션을 두 번 보고 나서야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죠. 애초에 공고가 떴을 때 모집요강에 지원조건이 ‘농구에 대한 지식이 높은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어요.저는 사실 자신 있었죠. 하하. 농구가 제 주종목이어서 평소에도 공부를 많이 했고, 농구 경기를 봐도 이제 못 알아듣는 게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면접 때도 기습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당황하지 않고 다 대답을 했어요. 면접관님이 감탄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됐다’ 싶었죠.

Q. 특히나 농구계에서 뜬 공고였기에 지원에 망설임은 없었겠네요.
당연하죠.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오히려 ‘옳거니’ 싶었죠. 농구였으니까요.

Q. KBL TV의 새로운 리포터가 되고나서 신인드래프트 날 첫 라이브 방송을 켰어요. 오랜만의 농구장 컴백이었는데 어땠나요.
라이브 방송은 또 새롭더라고요. 차라리 컨텐츠 촬영이면 제가 진행을하고, 인터뷰면 질문을 하면 되는데, 아무런 대본도 없이 라이브 방송을켰던 거예요. 약간 막막하기도 했죠(웃음). 시간제한은 있고, 팬분들이 댓글은 계속 올라오고 있으니까…. 나중에 방송을 다시 봤는데 또 흑역사를 만든 것 같아요. 그래도 생각보다 팬분들이 많이 들어와주셔서 덕분에 재밌게 끝낼 수 있었어요.

Q. 오랜만에 농구팬들이랑 소통을 해서 더 좋았을 것 같은데요.
농구는 그래도 제가 잘 아는 거라서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라 좋죠. 제가 예전에 야구장에 나갈 때는 경기를 중계하는 3시간 30분 동안 중계석에서 계속 댓글을 읽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가 제일 힘들기도 했죠. 농구장은 팬분들이 질문해주시면 제가 대답을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어요.

Q. 농구장으로 컴백을 알린 후 첫 현장이 신인드래프트였어요. 박예하 리포터도 새로운 길을 걸어온 지 얼마 안 된 입장에서 드래프트라는 행사가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한데요.
정말 새로웠어요. 사실 제가 작년 드래프트 때도 현장에 있었어요. 그때는 노윤주 선배를 따라 리포터 일을 배우러 갔던 거였죠. 올해는 또 다른 일을 하러 갔던 건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너무 좋았고요. 아무래도 제가 두 번째 직업을 살고 있어서 그런지 드래프트에 재도전하는 선수들에게 더 눈이 갔던 것 같아요. 뭔가 비슷한 심정이었나 봐요.

Q. 신인들만큼이나 이후 행보가 바빴어요. 신인들과 KBL TV 유튜브 촬영도 있었잖아요.
정말 다행이었던 건 제가 대학리그를 꾸준히 봤다는 거죠. 신인들은 아직 프로 무대에 정보가 없잖아요. 제가 농구를 몰랐으면 고생했을 텐데, 열심히 농구를 봤던 덕분에 신인들과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컨텐츠를 촬영할 때는 신인들이 빼지 않고 워낙 열심히 임해줘서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어요. 같은 처지의 신인들이랑 첫 촬영을 해서 다행이다 싶었죠. 하하.

Q. 첫 스케줄이 매우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은데, 농구장으로 돌아왔을 때 새로 세운 목표도 혹시 있었나요.
일단은 KBL TV 리포터 활동은 이번 시즌이 계약 기간이라서 부디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고 리그가 조기 종료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상황에 따라야 하지만, 쉽지 않게 돌아온 만큼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거든요. 제가 돌아오면서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가 있어요. 솔직히 처음에 농구장에서 리포터를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그저 긴장된 상태로 하루하루 불안함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다시 돌아왔을 때는 즐기자는 생각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부담을 많이 내려 놓으려고 하고 있어요.

Q. 즐기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현장에 쉽게 갈 수 없는 현실이 속상할 것 같아요.
맞아요. 생각보다는 지금 현장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요. 원래는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돌아다녀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쉽게 그럴 수가 없죠. 코트 인터뷰나 퇴근길 인터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KBL TV 리포터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땐 조금 속상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속상하던 와중에 이번 인터뷰 요청 연락을 받은 거예요. 너무 감사했어요. 이 인터뷰가 많이 위로가 됐습니다.

Q. 하루 빨리 그 속상함이 즐거움으로 바뀌길 바라면서, 혹시 농구장으로 돌아오면서 리포터로서 듣고 싶은 말도 생겼나요.
듣고 싶은 말은 딱 하나 목표로 하는 게 있어요. 농구를 진짜 잘 알고 좋아하는 리포터라는 말을 들었으면 해요. 제가 직접 이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아도, 제 활동을 통해서 보시는 분들이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Q. 개인적으로 농구장에 남기고 싶은 추억도 있겠죠.
특별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특별한 건데, 선수들이나 현장에 계신 분들을 인터뷰하는 일 하나 하나가 다 추억이 이미 됐고, 또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신인드래프트도 벌써 큰 추억이 됐고요. 아직 컨텐츠가 다 올라가지는 않았는데, 제가 유도훈 감독님께 KBL TV의 리포터가 됐는데 덕담 한 마디를 해달라는 장면이 있어요.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목소리도 좋고, 키도 크고, 잘 될 것 같다’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런 말 하나하나가 다 추억이고 감사해요. 평생 기억에 남을 일들이니 행복하고요.

Q. 아직은 이른 질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지금 직업의 다음 단계도 생각해봤나요.
종종 스포츠 잡지를 보다보면 아나운서 분들이 객원으로 고정 코너를 연재하기도 하더라고요. 농구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으니 제가 고정적으로 직접 컨텐츠를 운영할 수 있는 날도 온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팬들의 궁금증을 더 채워드릴 자신이 있거든요. 또, 여성 팬들의 마음을 잘 아니까 농구장에 입문할 수 있도록 포인트도 짚을 수 있고요. 뭔가 여성 리포터가 깊게 들어가 진행할 수 있는, 기존에는 없던 신선한 일도 해보고 싶어요.

Q. 그 꿈을 모두 이루시길 응원할게요.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농구 팬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제가 농구를 정말 좋아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갈거에요. 도움이 되고 재미도 있는 컨텐츠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하기 때문에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 사실 야구 같은 종목에 비해 농구는 리포터라는 포지션이 활성화가 덜 되어 있어서 낯설 수도 있지만, 제가 잘 해서 좋은 시도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할거에요. 잘 부탁드리고, 지켜봐주시길 바래요!  

#박예하 리포터 프로필
1996년 10월 30일생/동덕여대 모델과/인스타그램 @yesyeha
주요 경력
2018 미스코리아 강원 와일드카드
2019 스포카도 리포터
2020 KBL TV 리포터
#사진-홍기웅 기자
#장소제공-M.vans Studio(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 140(반포동) B2F)

 

점프볼 / 김용호 기자 kk2539@jumpball.co.kr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