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국공 사태 진원지 보안검색 노조, 어쩌다 설립 취소 위기에

곽래건 기자 2021. 1. 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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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허가해주고 12월 갑자기 '취소하겠다'
노조, "정규직 전환 반대했더니 와해시키려해"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보안검색원 노조에 대해 인천 중구청이 노조 설립 신고에 대한 취소를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해당 노조는 인국공 사태 당시 정부 주도의 일방적 전환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던 곳이라 그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행정처분을 빙자해 노조를 와해시키려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 없다'며 받아주고 9달 뒤 ‘취소하겠다’

1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 중구청은 지난달 28일 인천공항보안검색서비스노조(약칭 ‘보안검색 C노조') 측에 ‘설립 절차에 법적인 하자가 있으니 노조설립신고증 교부를 직권으로 취소하겠다’는 내용의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C노조는 작년 3월 25일 ‘노조를 설립했다'며 중구청에 신고했고, 중구청은 3일 뒤 ‘문제가 없다'며 신고증을 발부해줬다. 그런데 9개월만에 이를 180도 뒤집고 이 신고를 취소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현행법상 이 신고가 취소되면 노조는 ‘불법 노조’가 된다. 그동안 사측과 맺은 합의들도 무효가 될 수 있다.

인천공항 협력업체 소속이었던 보안검색원 1900명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에 따라 본사 소속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정부 정책에 찬반 여부가 갈리며 노조가 쪼개졌다. ‘A·B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강하게 요구했고, C노조는 ‘전환 과정에서 시험에서 탈락하면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작년 3월 서로 갈라섰다. C노조는 이 문제를 전체 총회가 아닌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했는데, 이것이 불법이라는 것이 구청의 판단이다.

지난 14일 인천 중구청 앞에서 인천공항 보안검색 C노조 관계자들이 '구청이 노조 와해 공작 시도를 하고 있다'며 홍인성 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박상훈 기자

설립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현행 노조법상 이런 경우 대의원대회가 아닌 총회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곧바로 직권 취소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C노조는 “문제가 있으면 이를 보완하면 되는데 구청이 이런 절차도 없이 막무가내로 신고 자체를 취소하려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구청은 “노조 설립 근거가 없어진 셈이라 이를 바로잡으려면 취소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도 “직권 취소 여부는 중구청의 재량”이라는 입장이다.

중구청이 애당초 신고증을 내 줄 때 이 문제를 걸러냈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중구청은 절차 하자 문제를 작년 5월 A·B노조가 ‘분리 절차가 잘못됐다'며 민원을 제기한 뒤에야 인지했다고 한다.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까지 나서 중구청 압박

지난달 8일 박해철 한국노총 공공노련 위원장이 중구청에 보낸 공문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공문에는 “12월 14일까지 (C노조에 대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구청 관계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중구청에 대해서도 정부부처의 감사청구 등 공공노련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정부·국회·언론 등을 통해 책임을 엄중히 묻고자 한다”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정명령을 이행하라”고 써져 있다.

노동계 인사가 노조에 제재를 가하라고 구청을 압박한 셈인데 공항 안팎에선 인국공 사태의 연장선상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인국공 사태는 작년 6월 20일 공사가 보안검색원 1900명의 직접 고용 방침을 갑자기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공사와 정규직 노조, 보안검색 A·B노조, C노조 사이에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정부 주도로 A·B노조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조선일보DB

당시 상황에 정통한 공항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박 위원장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던 A·B노조가 박 위원장을 찾아갔고, 박 위원장이 이를 다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보안검색원의 본사 직접 고용은 현행법상 불가능했는데, 고용노동비서관실은 이후 공사와 노조들은 빼놓고 관계 기관과 부처들만 불러 세 차례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 노동계에서는 “박 위원장이 정치권 진출을 위해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공을 세우려 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또다시 A·B노조편을 들며 구청에 공문을 보내 압박한 것이다. 일부에선 ‘C노조 등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정규직 전환에 다시 동력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는 당과 노동계를 연결하는 역할로, 당의 노동 정책에 관여한다. 노동계 인사 중 전국노동위원회를 거쳐 현직 국회의원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구청은 “직권 취소 여부는 법적 문제일 뿐 박 위원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본지는 박 위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응답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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